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다고... 내 탓이야?
누구나 지키고 싶은 마지막 보루가 있다.
그 누군가에게는 현금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외모의 경쟁력이기도 하고, 자존심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가정이었다. 마지막까지 내가 지키고 싶었던 보루, 결국은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 코스프레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말 코스프레였는데 결코 나는 그림 같은 집을 정성껏 매일 정리하고 그 안을 정리의 여왕이 된 듯이 채우고 정리하는 것은 할 줄도 모르고 할 수 도 없이 입만 살아 있는 코스프레에 정신 팔린 덜 자란 어른이었다.
그러나 정신 못 차리고 코스프레에 몰두하다 보니 내가 쓴 가면에 내가 취해서 나는 아무 문제없는 완벽한 정리의 여왕이었으며, 그림 같은 음식을 어려움 없이 해내는 슈퍼우먼이었고, 현모양처의 모습이 나라고 믿어 버렸던 것이다.
언제나 머릿속에는 그림 같은 집이 그려져 있었다. 잡지에나 나올 듯한 그런 집안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라는 그 흔한 여백의 미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여백이 뭐가 아름다운가? 교양이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고, 알고 싶어 한 적도 없는 저속한 나에게 여백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저 채워야지 채우고 또 채워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보여주리라. 개봉박두!!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순간에 취해 눈에 띄는 것들로 채운 나의 집은 양말 짝 조차 서로 다른 조화라고는 찾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안을 채우느라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만 그림 같은 그 집에는 푹신해서 누구나 편안해하는 소파하나 없어, 아이는 밤 잠을 길게 자지 못했고, 아이의 아빠는 판타지 세계에 적적한 마음을 의지하느라 회사에서의 피곤한 몸은 새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두 한결같이 신음소리를 내는 그림 같은 집에 그림 같은 아이를 키우는 나는,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포장의 달인이었다.
혹여라도 누군가 진짜 우리 집을 올까 봐 노심초사하던 날들... 나의 아이는 생전 울지도 않고, 방실방실 웃음으로 일관하는 잡지의 아기 모델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의 아빠는 말끔한 슈트를 입고 젠틀하고 쿨한 모습으로 유능한 성공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사실은 모두 울고 있었던 진짜 나의 가정을 들키는 것은 예리한 칼날이 나를 향해 오는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 하나 집을 찾아온다고 하면 며칠을 공들여 청소하고, 남편은 아침에 출근한다는 각본에 맞춰 출근할 일 없는 남편을 집에서 나가게 하기 위한 갖은 회유와 강요를, 그림같이 방긋 웃는 아들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온갖 정성을 들였다.
나는 완벽했다.
내 상상 속에서.... 모두가 나의 연출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세상은 나를 완벽하게 볼 것이라는 기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나의 마지막 보루 가정은 병들어갔다.
그래서 이게 내 탓이야??
내가 연기하던 완벽한 슈퍼우먼인 현모양처의 현명한 어머니는 완벽한 발연기였고, 내 연기가 안 믿어졌던 것을 내가 인정하지 않아서? 그래서 이게 다 내 탓이야?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나에게 매일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아이 아빠의 말은 내 대본에는 없었다. 그는 매일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서 의욕에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데, 그는 나의 대본대로 하지 않고 자신만의 애드리브를 하기 시작했다.
내 대본에 없는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나의 대본은 완벽하니까....
나도 배우였는데...
나는 배우니까... 배웠었어야 했다.
다른 사람과의 같이 하는 연기 호흡을 맞추는 법을 말이다.
나는 혼자 현모양처 연기하느라고 같이 사는 아기와 아이 아빠와의 호흡 맞추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들이 내 연기에 질려서 점점 연기의 집중력을 잃어가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편치 않는 물건을 가득 채운 집에서 입에 붙지 않는 대본으로 매일 연기하는 나의 가정은 조기 종영이 예고되고 있었는데, 정작 대본을 쓰고 연기도 하는 연출가인 내가 몰랐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내 탓이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