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나와 마주하기
나는 남이 하는 건 다 해 보고 싶다. 한 번씩 건드려 보는 걸로는 모자라다. ‘잘’ 해야 한다. 그러니까, 처음인데도 잘 하고 싶다. 다들 그런 로망 있지 않은가. 처음 (또는 그냥 대충) 해 봤는데 너무 잘 해서 ‘OO계의 떠오르는 천재’가 되는 로망. (나만 그런가?) 그러다 조금이라도 잘 하는 걸 찾으면 거기에 폭 빠지게 된다. 딱 하나만 예를 들자면 운동 같은 것. 뭐 내가 진짜로 운동에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갓 시작한 다른 초심자들에 비해 아주 조금 더 잘 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미친 재능의 소유자라 갑자기 본업을 그만두고 헬스 트레이너를 할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잘 해서 뭘 하겠는가. 그저 자랑할 거리가 하나 더 느는 것 뿐이고 기분 좋은 일이 하나쯤 더 생기는 것 뿐이다.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 같은 건 부질없다. 특히 이십대 중반을 훌쩍 넘겨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한 사람이라면 추해보이기까지 한다. 이 커다란 우주 안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먼지같은 존재- 같은 말은 그때 뿐이다. 이미 좁아질 대로 좁아진 마음에는 그런 커다란 울림이 비집고 들어올 틈 조차 없다.
그래서일까? 주변에 나보다 이걸 더 잘 하는 사람이 생기면 질투가 난다. 진짜 찌질한 생각인 거 아는데도 멈출 수 없다. 그러면 나는 보통 둘 중 하나로 생각을 정리한다. ‘어떻게 나보다 더 잘해?’ 하며 시기하거나, ‘원래 나보다 잘 했던 사람이야.’ 하며 자기합리화 하거나. 나는 엄청나게 쪼잔하지만 나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헬스를 시작하고 몇 달 안 되었을 즈음, 당시 나는 ‘근수저’라며 자만을 한껏 떨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제법 꼴볼견인 상태였다. 근 30년간 운동을 아예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근육량이 많은 편이었고, 몸이 제법 유연한 편인 데다가 근육을 쓰는 것에 익숙해 자세가 좋다는 평을 들은 뒤였다(지금도 나는 내가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이런 말들을 덧붙였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3대 운동이라는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를 빠른 기간 내에 무게를 늘렸고 이 중 데드리프트는 비슷한 조건의 남자들에 비해서도 잘 치는 편이었다. 운동 초심자가 대부분 그렇듯 잔뜩 우쭐해져서는 내가 든 무게를 자랑하며 떠들곤 했다.
그러던 중 주변 사람 중 하나가 나를 보고 용기를 얻어 헬스를 시작하면서, 나의 찌질하고 못난 자아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남이 나를 보고 뭔가를 시작했다고 하면 응원해주는 게 맞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졌다. 나보다 잘 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내심 있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서 내가 제일 잘 해야 하는데(사실 이미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은 지천에 널려있음에도), 사실 내가 월등히 뛰어난 게 아니라 그저 평균 정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자는 건강한 사상같은 건 떠올릴 여유도 없었다. 이미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일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주에 운동을 몇 번 나가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떠드는 나보다 훨씬 더 부지런했다. 그 부지런함까지 시기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모든 것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간다고 하면 신발주머니를 챙겼고, 건강식을 먹는다고 하면 건강식을 따라 먹었다. n키로가 빠졌다고 하면 득달같이 따라 체중을 줄였다.
웃기게도 그건 제법 효과가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트위터나 인스타, 유투브를 돌려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게으름뱅이였지만 질투가 기어이 게으름을 이긴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많은 일들이 그랬다. 나의 우울하고 불안했던 시기들을 떠올려보면 그 근원에는 ‘해야 되는 걸 아는데도 하지 않는다’는 모습이 있었다. 가장 흔들렸던 고3 시절부터, 지나쳐온 모든 시험기간과 취준 기간, 업무가 익숙해졌을 즈음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명확하게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내가 싫었던 거다. 그리고는 그걸 멀쩡히 자기 할 일 잘 하는 타인에게 투영해서 미워할 대상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걸 깨닫고 나서는 내가 가장 외면하는 일을 일단 해보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게으른 인간이니까 어떻게든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 업무 관련 공부가 하기 싫어 방통대에 편입했고, 운동하는 게 싫어 PT를 등록했다. 게으른데 욕심 많은 사람에게는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중요했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말해두라는 조언이 이제 이해가 됐다. 뱉어놓은 말이면 책임지기 위해 억지로라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행동이라는 게 매번 그렇듯 하면 하게 된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시작하면 어떻게든 하고 있다. 심지어 마치면 성취감까지 든다. 불완전한 감정으로 시작했지만 결과까지 도달하는 과정에는 변해가는 나를 보는 즐거움이 고개를 들이민다. 질투는 시작점일 뿐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질투는 나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