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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감내하는 자세

이번에는 내 스스로 나에게 고생할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by 송너

이직을 하기로 했다. 사유는 돈 때문이다. 작년 9월부터 계속 월급이 50%씩 지급이 되었고, 올해 6월까지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지난 1월부터는 말일마다 50%씩 추가 지급이 되어서 현재 밀린 월급은 약 2.5개월 분량이다.


돈을 쪼개 받으니 저축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돈을 적게 쓰면 되는 것 아니냐 하는데, 막상 받아보면 그게 안 된다. 그냥 나의 소비 습관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저축은 멈춘 지 한참 됐고 만기된 적금은 재예치도 하지 못했다. 월급이 밀리는데 돈은 예전보다 더 쓴다. 스트레스를 소비로 푸는 것 같기도 하다.


현 직장에 돈 외의 불만은 딱히 없다. 있어봐야 새 직장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불만 요소, 적응하는 데에 드는 에너지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사실 여기 있는 게 맞다고도 생각했다. 거리가 조금 멀긴 하지만, 재택 제도가 있어 주에 2일 재택을 한다. 인간 관계로는 지금까지 세 개의 회사를 다니면서 스트레스가 적은 곳이다. 적다 못해 팀원들은 너무 좋고 심지어는 헤어지기 싫어서 우울할 지경이다. 그러니까 정말 불만이 없었다. 돈 문제 빼고.


나는 욕심이 좀 많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냥 통장에 매달 찍히는 월급의 금액이 컸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확률이 썩 좋지 않은 가챠 돌리기 vs 그냥 살기 에서 나름 과감하게 전자를 선택해본 것이다.


혹시 모를 리스크를 지면서도 옮기는 이유는 변화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겨우 삼십 년 남짓이지만 나는 정말 고생하지 않고 살아왔다. 누군가에게는 고생스러워 보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평탄해보일 수도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아무도 겪지 않았고 오직 나만 겪어 본 나의 삶을 총평하는 것은 내 마음 먹기 나름이기에, 나에게 내 삶은 고생하지 않은 삶이었다. 평범하게 가난하고 평범하게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본 경험 또한 없다. 살다 보니 살아졌고 관심갖고 싶은 것에 관심가지다보니 지금의 일을 하고 있다.


인생이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어야 한다는데, 나에게는 그런 커다란 골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 스스로 나에게 고생할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고생하다 보면 좋은 일이 또 생기겠지. 만에 하나 좋은 회사라면 그것도 내 복인 것이다.


나는 나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경향이 있다. 남의 잘못에 내가 피해를 입게 되면 화가 나지만, 내 잘못에 내가 고생하면 담담해진다. 내가 용인한 남의 잘못에도 담담해질 수 있다. 남의 잘못까지도 감내하리라 마음 먹고 있으면 피해에 휩쓸려도 그렇게 화가 나지도 않는다. 어쨌든 감내하기로 한 것이니까. 올해의 모든 선택에는 그런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서른 살, 2025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다녀왔고, 첫 연애도 해봤다. 나의 목표를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하반기부터는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10년 만에 바뀌는 앞자리가 나에게 제법 의미가 큰 모양이다. 평소라면 조금 주저했을 일도 야심차게 시작하게 된다. 새 직장에 학업에, 하반기가 바쁘기는 하겠지만 아직도 계획해 둔 것들이 많다. 모두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이 중 반이라도 한다면(사실은 지금까지 한 것만 해도) 성공한 해라는 확신은 있다. 나에게 있을, 내가 선택한 모든 고난과 갑작스레 찾아와 줄 행운을 기대하며, 변화의 중턱에서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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