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간지나잖아요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어보여서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는 제법 글을 잘 쓴다는 얘기도 들었었는데(사실 그때도 지금도 별로 동의하지 못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은 글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됐다. 저번 주쯤 글쓰기를 좀 배워보고자 강의를 찾아서 시범 수업을 신청했다. 신청 폼에 고민을 쓰라고 해서 글을 시작하기 어렵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소재에 대한 고민) 등등도 써냈었다. 나는 어느샌가부터 생각이라는 걸 깊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고 그래서 글을 쓰는 데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는 게 나의 가장 큰 문제 같았다.
월요일에 시범 수업을 하기로 했다. 수업 전에 짧게 나의 목표에 대해서 한 번 써보면 좋을 것 같았다.
나의 인생 목표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
나는 재능이 특출난 사람도 아니고 엄청나게 봉사, 희생 정신이 강한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이 있길 바라고, 그 영향이 좋은 쪽이길 바란다.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길 원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제법 낯간지럽기 때문에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나는 남을 도울 때 그 자체로 기쁨을 느낀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도움을 주고 감사를 받는 것이 나에게 즐거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남에게 도움을 주려면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주변에 베푸는 작은 선행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나 싶지만, 나는 어쨌든 많은 사람들-불특정 다수-에게 도움을 주고 싶으니까. 영향력이 있기 위해서는 내가 유명해지거나 어떠한 분야에서 특출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일 테니까. 우선 단시간에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이건 차차 단계를 밟아가며 달성해보도록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우선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어떤 것을 글의 소재로 쓸 수 있을까? 나는 '나'가 유명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신변잡기를 쓰기에는 앞서 말했듯 유명하지 않은 나의 일상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덮어두기로 했다. 어떻게 써야할지, 재미는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관찰력이 높은 편도 아니고, 일상에 매번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사람도 아니라는 점도 그 근거를 함께했다)
역시 취미다. 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나'의 취미이지만 그 안에서 어떤 소재를 잡든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에게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게 뭐가 있을까. 단번에 떠오르는 건 '뜨개질' 이었고, 이어 애매하지만 최근 부러 시간을 내 하고 있는 일인 '운동'도 꼽을 수 있겠다. 뜨개질과 운동. 제법 즐기는 인구가 많으니 예비 독자층이 많을 것 같았다. 그런데 또 고민이 생겼다. 이것들에 대해서 글을 쓰기에는 나의 능력이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처음 시작하는 초보도 아니고 엄청난 고수도 아니기 때문이다. 취미를 즐기면서 많은 고민을 하거나 정석적인 방법만을 쓰지도 않기 때문에 꿀팁이나 정보를 줄 수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취미로 대체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선생님께 전달했다. (말하면서도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다 해도 되나 싶었지만, 선생님께서 다행히 내 말을 많이 하는 게 오늘 수업의 방향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얻은 해결책은 간단했다.
우선, '짧게 써야' 한다. 시간을 짧게 가져가거나 문장을 짧게 가져가는 것이 부담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짧게 쓰는 시간은 5분, 10분 정도로, 30분 이상 넘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계속 타이핑을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타이핑을 한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써야한다.
두번째로는 '좁게 봐야' 한다. 뜨개질이나 운동과 관련한 수많은 글감 중 딱 하나만 정하는 것이다. 내가 뜨개질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뜨개질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 뜨개질을 시작하게 된 계기. 좁게 보되, 자세히 써야 한다. 헬스에 대해서 내가 쓰고 싶은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내가 가장 잘 말할 수 있고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써 보자. 아주 좁게 보되, 자세히.
그 다음으로는 '보여 줘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면 질문이 생긴다. 예를 들어 내가 '운동에 가기 싫을 때 나는 이렇게 한다'는 주제의 글을 썼다고 하자. 나의 방법을 글에 담아 초안을 쓴다. 남에게 보여준다. 나의 시각이 아닌 타인의 시각에서 질문거리가 생긴다. 운동에 가기 싫을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나가는 게 나의 방법이라는 글에서 타인은 왜 아이스 아메리카노인지, 그걸 언제 마시는지 등의 질문을 갖게 된다. 그러면 나는 그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을 글에 덧붙일 수 있다. 타인과 질답을 나누다 보면 체화할 수 있고, 나 스스로 질답하며 써나가면 글이 된다. 생각의 흐름을 터주는 것이 이 과정의 목표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쓸 때 내가 '즐거워야' 한다. 즐겁지 않고 의무감으로 쓴 글은 진심을 전할 수 없다. 내가 이 글의 소재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많고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만 글에 진심이 묻어난다. 글을 쓰면서 재미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신나고, 재밌고, 하고 싶었던 말들이 술술 풀려 나오는지를 느끼면서 글을 쓰자. 쓸 때의 몰입감과 재미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제법 재미있었다. 그제 들었던 수업을 바로 정리하지 못하고 이틀이나 밀려 오늘에서야 쓰고 있지만, 왜 미뤘나 싶을 정도로 술술 풀리는 게 나에게는 신기한 경험이다. 글을 쓰지 못하겠다고 차일피일 미뤘던 지난 날들이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단 하나 아쉬운 건 키보드가 말을 안 듣는 건지, 맥 OS의 문제인지, vs code(적당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찾지 못해 우선 익숙한 프로그램을 켰다)의 문제인지 자꾸 글자가 씹혀서 불편하다는 것. 처음에는 한두 문장이나 제대로 쓸까 싶었지만 제법 글이 길어진 게 보여 조금은 뿌듯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열심히 써봐야지. 너무 열심히는 부담스러우니까 말고, 적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