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넹.
계약 만료 퇴사지만 해고 통보나 다름 없지. 수습 3개월 채우고 짤리는 경험은 또 처음이라 새롭다. 나는 내가 엄청나게 화나거나 엄청나게 슬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고 굉장히 무덤덤했고 그냥 이유가 좀 궁금했다. 왜? 뭐가 문제였을까? 면담 신청을 했는데 면담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퇴사하면 좋은 걸 일단 생각해봤다. 사실 회사 생활 하는 3개월 사이에도 배운 게 많아 완전히 시간을 버린 건 아니다.
만 7년을 일하며 공백은 4개월이 채 안 된다. 회사를 세번 옮겨 지금은 네번째 회사이지만 첫번째에서 두번째 회사에 갈 때 있었던 공백 3개월, 두번째 회사에서 세번째 회사 사이의 공백 2주, 세번째 회사에서 지금 회사에 오기 전 쉬었던 일주일. 게다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아르바이트 3개월 후 첫 취업까지 생각하면 거의 쉬지 않고 계속 일한 셈이다.
못 쉬었던 기간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없는데, 남들 얘기 들어보면 다들 몇달씩 놀고 그랬더라. 나도 이참에 한 번 푹 쉬자 싶어 한달은 취업 공고도 안 보려고 한다. 이게 첫 번째 좋은 점.
또, 방송통신대학 재학중인데 이제 덜 바쁘게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두번째 좋은 점. 올해 편입한 대학생인데 재직하면서 강의 듣는 게 은근 빡센 일이더라. 남들은 어떻게 재직하면서 졸업을 했는지 몰라. 마침 해고를 당한 덕에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곧 중간 과제물 제출 기간인데 바쁘게 좇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은 점. 이럴 줄 알았으면 전공 5개 들을 걸 그랬다. 이건 아쉽네.
마지막으로 사업자를 낼 수 있다! 이제 전 직장이 되어버린 네번째 회사에서 겸업금지 조항이 있어 사업자를 낼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린 귀여운 캐릭터 굿즈들은요...? 이 친구들이 세상 빛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
솔직히 내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집 와서 엄마한테 말도 못 하겠고 방에 앉아있는데 좀 눈물이 났다. 한 1분 정도 우니까 또 아무렇지 않더라. 처음 겪는 일이라 약간 서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저 짤렸어요,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나 대신 화내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 인생 잘 살았구나. 괜찮냐고 물어보면 안 괜찮을 게 뭔가 싶어 일단 괜찮다고는 했다. 근데 안 괜찮아야 하는 건가? 사실 분노하거나 우울하거나 괴로워야 하는 건가? 그래서 마음을 조금 들여다보기로 했다.
사실은 약간 동떨어진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두시간을 그냥 맨 방바닥에 누워만 있었다. 그러고 있는 걸 자각했더니 또 내가 무기력한가? 싶은 거다.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있는 내 모습은 또 싫어서, 씻으려고 일어나 에이 XX, 내가 오늘 살고 죽을 것도 아닌데. 생각했더니 또 아무렇지 않아졌다. 사실 조금 힘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겪은 일에 크게 흔들려야 하나 생각하니 억지로 내가 감정을 회피하는 건가도 싶다. 사실은 진짜 괜찮은 건지 안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기분은 진짜 괜찮은 것 같아서 어쨌든 괜찮다는 말은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