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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Dec 06. 2017

낙엽[落葉]

생존을 위한 상실(喪失)

낙엽[落葉]


바야흐로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 되었다.

낙엽[落葉]은 고등식물에서 잎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울긋불긋 단풍잎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바스락 거리며 부서지는 낙엽을 밟으며 가을이 이만큼 가까이 왔음을 실감했다. 우리집 막내 이안이는 작년 여름 태어났으니 이번이 두번째 맞이하는 가을이지만, 손에 직접 단풍잎을 쥐어본 건 올해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몇일 전 아기학교에선 아이들과 집 앞에서 주운 단풍잎과 은행잎을 가져다가 길게 자른 도화지 위에 붙이고 도화지의 양 끝을 고무줄로 묶어 왕관을 만들어 썼다. 그리고 남은 낙엽들을 모아 공중에 뿌리며 추억의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아이들도 "아~ 아~" 하고 인디언 소리인지(?) 뭔지 모를 귀여운 괴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추억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낙엽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도 하지만 이 낙엽을 보며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올 것임을 우리는 안다. 기온이 떨어지고 해가 짧아지면 나무줄기와 잎을 연결하는 통로에는 작은 가시가 돋아나서 양분의 공급을 차단하게 되는데, 양분을 보존하기 위해 나무가 스스로 내리는 결정인 것이다. 그러면 줄기로 가진 못한 양분이 잎에 쌓여 엽록소를 파괴하게 되고, 그동안 엽록소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붉은 혹은 노란 색소가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무는 이렇게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일부인 잎을 떨어뜨리는 '상실[喪失]'을 해마다 받아들이고 있다. 상실은 비단 나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오늘 치열한 삶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나의 일부를 떼어냈다. 그것은 시간이다. 나에게 시간은 매우 중요한 나의 일부다. 시간은 나에게 돈을 벌어다 주고, 그 돈으로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시간은 나에게 쉼도 줄 수 있고, 시간은 즐거움이기도 하며, 시간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귀한 가치이다. 나의 이 시간을 떼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오롯이 부흥회에 쏟았다. 이것은 영적 목마름에 대한 해갈을 얻기위한 어쩌면 몸부림같은 것이다. 사실 그동안 바쁜 일상에 제대로 된 휴가도 누리지 못하고 주말이랄 것도 없이 고속질주 해왔던 내게, 언제부터인가 귓가에 이명[耳鳴]까지 울려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다보니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육체적인 쉼은 나를 온전케 하는데에 한계가 있었다. 영적인 해갈, 말씀에 대한 고픔이 이 부흥회를 통해 채워지길 그리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씀으로 채워주시길 기도했다.


드디어 부흥회에 참석했을 때, 과연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어떤 것을 주실지 내심 기대했다.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실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하지만 바쁘다고, 혹은 더 중요하다고 해서 내 안에 세상의 것들로 채워넣느라 내 중심으로부터 저만치 밀려난... 가장 중요한 그 이야기. 복음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만 했던 이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누릴 천국. 우리의 죽음 뒤에 누릴 영생의 기쁨. 이것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복음의 오롯한 이야기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와 용서의 카드를 품에 넣고도 구두주걱으로도 사용치 않고 있던 내게 하나님은 그것을 꺼내어보라며 그 자리에서 말씀해주셨다. 나를 살리는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구나. 내가 죄인이었음을 깨닫는 것,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믿는 믿음. 이 복음이야 말로 나를 온전케 하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어제...

복음으로 회복의 불씨를 키운 내게 하나님이 가장 먼저 바라보게 하신 것은 다름 아닌 나의 가정이었다. 바쁘다고, 힘들다고 하며 돌보지 않은 것은 내 몸만이 아니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도 어쩌면 그렇게 방치되어 돌보지 못한채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말씀 중에 강사 목사님이신 이의수 목사님께서 자녀들의 어릴적 촬영했던 영상을 보여주시는데, 순간 우리 아이들이 팍! 떠올라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 뱃 속에 있다가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던 그 순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빛처럼 사방을 가득 메우는 그 울음소리.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 했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태어나 손을 허공에 휘휘 내젓던 그 날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 때는 그렇게 아이와 눈만 마주쳐도 나와 아내에게 하루종일 최고의 화젯거리가 될 만큼 소중한 나날이었다. 영국의 한 낭만파 시인의 말처럼 행복한 가정은 내게 그야말로 미리 맛보는 천국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바쁘고 피곤하단 핑계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조차 못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미안했다. 옆에 있었다면 꼭 안아주고 싶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아끼지 아니하는 아내의 헌신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보다는, 그도 인간이기에 연약함으로 인해 드러난 작은 허물을 나무랐던 나의 과오들도 말씀을 통해 드러났다. 말씀을 들으며 정말 발가벗겨진듯 했지만 감사했다. 마치 거울이 없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내 얼굴에 묻은 검은 때를 말씀에 비춰 발견하게 하신 듯 했다.


계속되는 말씀을 통해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가 기대된다. 그 말씀으로 내 삶을 어떻게 또 변화시키실지 기대된다. 나무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제 몸의 일부인 잎을 떨어뜨리지만, 남들은 그 속도 모르고 아름답다고만 한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 역시 내가 살기 위해 오늘도 시간을 떼내어 말씀 앞에 나아갈텐데, 이 떼어낸 시간들로 말미암아 내가 변화되고 변화된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없을 것이다. 이번 가을, 말씀을 통해 나도 예수님을 증거할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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