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주영 May 26. 2016

Strawberry Fields Forever

John Lennon 그리고 伯牙絶絃(백아절현)

John Lennon


20세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싱글로 평가 받는 The Beatles의 <Strawberry Fields Forever/Penny Lane> 에 수록된 두 곡 중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곡은 "딸기 밭이여 영원하라!?" 가 아니고 "Strawberry Fields Forever" 이다.

Strawberry Fields 는 비틀즈 멤버들의 고향인 리버풀에 존재하는 실제 지명 이름이며, 구세군이 운영했던 고아원으로 알려져있다. 그들의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그곳에 대한 어떤 가사가 쓰여있을까..


Let me take you down, cos I'm going to Strawberry Fields
Nothing is real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Strawberry Fields forever

당신을 데려가고 싶어요, 난 스트로베리필즈로 갈거니까요.
현실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죠.
스트로베리필즈여, 영원히



Living is easy with eyes closed
Misunderstanding all you see
It's getting hard to be someone but it all works out
It doesn't matter much to me

눈을 감아버리면 사는게 쉬워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요.
무언가가 될수록 사실 점점 힘들어지겠죠.
하지만 노력해봐야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No one I think is in my tree
I mean it must be high or low
That is you can't you know tune in but it's all right
That is I think it's not too bad

내 나무 속에는 아무도 없어요.
그것은 높거나 낮아야 하죠.
당신이 그것을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Always, no sometimes, think it's me
But you know I know when it's a dream
I think I know I mean a "Yes" but it's all wrong
That is I think I disagree

가끔이아닌 언제나 그것은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은 꿈속에서의 내 모습이죠.
이해한다고 하지만 전부 틀렸어요.
다시말해,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Let me take you down, cos I'm going to Strawberry Fields
Nothing is real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Strawberry Fields forever

당신을 데려가고 싶어요, 난 스트로베리필즈로 갈거니까요.
현실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죠.
스트로베리필즈여, 영원히



<Strawberry Fields Forever> - The Beatles


사실 아쉽게도 가사에는 장소에 대한 묘사나 언급이 많이 나와있지는 않다.

다만 존 레논 자신의 생각과 현재의 심정을, 추억의 장소에 투영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들의 어린시절 추억의 직접적인 묘사는 싱글에 함께 수록된 <Penny Lane>이라는 곡에 재밌게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음원 차트를 통해 봐도 <Penny Lane> 이 <Strawberry Fields Forever> 보다 더 대중의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치만 비틀즈의 노래에서 차트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


여튼 오늘은 Strawberry Fields Forever 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바가 있다.

그것은 나무(Tree)에 투영된 자신의 의식과 그것을 이해해주는 친구이다.


No one I think is in my tree
I mean it must be high or low
That is you can't you know tune in but it's all right
That is I think it's not too bad

내 나무 속에는 아무도 없어요.
그것은 높거나 낮아야 하죠.
당신이 그것을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 The Beatles 의 <Strawberry Fields Forever> 中


존은 스스로도 자신을 평범하지 않다고 평가해왔다.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한 천재이기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천재 또는 바보 일텐데 존은 천재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천재, 바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존이 사람들의 이해를 갈구하지도 않았고,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아' 라고 노래했지만

그 역시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잘 알려진 요코 오노(YOKO ONO)이다.

처음 그녀의 전시회를 통해 만나 그녀에게 예술적인 영감에 동감을 느낀 존 레논은 그녀와 교제하기 시작하며

음악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반전(No War), 평화(Peace) 그리고 사랑(Love)에 관한 주옥같은 음악들을 내놓게 된다.

<Imagine>, <Love>, <Oh my love> 같은 곡들이 이 시기 요코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곡들이다.


사실 존과 요코는 둘다 각자의 가정이 있었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갔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가정을 깨뜨리고 불륜이나 다름 없는 관계에 뛰어든 것을 두고 세상의 비난이 쏟아졌다. 평화와 사랑을 노래한 이들이 정작 각자 본래 가정의 평화와 사랑을 철저히 외면한 것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노래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관계를 합리화 하기 위한 어설픈 논리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여튼 논란이 많은 이 부분을 잠시 뒤로 놓고,


천재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간절하다는 것이다.

모든 싸움과 전쟁의 원인도 이익을 사이에 놓고 서로 양보와 이해, 타협이 성립되지 않아 생기는 것.

작은 갈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연약한 본성이다.




백아절현[伯牙絶絃]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고관 중에 '백아' 라는 거문고의 달인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 연주 소리만 들어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맞출 정도로 뛰어난 이해력과 감상력을 가진 친구였다. '백아'와는 거문고를 통해 정확히 일치하는 음악세계를 가진 둘도 없는 친구여서 '백아'는 '종자기' 앞에서 연주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친구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자 슬퍼했던 '백아'는 더이상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자신이 가장 아끼던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짧지만 서로를 잘 이해해주는 친구들의 우애에 빗대는 사자성어로 잘 알려져있다.

사실 나도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이렇게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구나' 라는 생각이 왠지 모르게 들 곤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요즘은 그런 생각이 조금 바뀌고 있다.

과연 사람에게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사람이란 상황에 대해 굉장히 연약한 존재여서 그 부분을 흔들어 놓으면 쉽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평소 강직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는 사람도 반드시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돈이든 그 부분을 건드리면 여지없이 중심이 무너지게 된다.


<백아와 종자기>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이러한 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정당한 것을 요구하고 싶고, 옳다고 여기는 가치에 대하여 목소리 내고 싶지만,

우리는 고용된 사람, 월급을 받는 입장, 소위 말하는 "을" 이라는 약점때문에 목소리를 꾹꾹 눌러담아야 한다.

늘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가족들이지만, 이럴땐 내가 지켜야만하는 약점과 같이 느껴지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도 젊지만 조금 더 젊었던, 혈기왕성했던 시기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고 해도 까짓것 한번 바위를 쪼개보자라는 무모한 생각으로 온 몸 내던져 부딪혀보고, 온 몸으로 내질러 존재를 과시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 스스로 결코 부서져는 안 될 이유.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 딸.

나의 힘의 원동력이자 나의 약점. 무엇이든 참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강하고 지혜로운 존재며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이지만,

세치 혀의 간사한 말에 휘청거려 생명산의 선악과를 따먹고 영원한 사망의 굴레로 스스로 몸을 던진 연약한 존재이다.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마치 일렁이는 파도 물살 위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이 그야말로 지푸라기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 나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지한다지만 결국엔 거문고의 줄을 끊고마는 더 큰 절망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함께 넘어지기


그런데 최근 나에게 고민이 생겼다.

고민이라고 하는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작고 귀여운 내 아들. 이 녀석이 의지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나와 내 아내. 곧 아빠와 엄마라는 사실.

세 살 밖에 되지 않은 이 작은 아이.

누군가의 손을 잡지 않고는 계단도 혼자 오를 수 없는 이 아이가, 아빠 엄마를 의지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 잠시지만 딜레마에 빠졌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아이에게는 의지가 되는 사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부모로서의 본능적인 욕구가 생긴 것이다.

머리로서 생각과 가슴으로서 본능적 욕구가 상충하는 상태.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어느정도 방향을 잡았다.


그것은 "함께 넘어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나도 함께 넘어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마치 아빠의 연약한 모습을 아이에게 들킨 것 처럼 보이지 않게...

아이가 그것으로, 의지했던 아빠란 존재에 대해 충격과 허탈감을 느끼지 않게...

아이가 자신의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지 않게...

서서히 함께 구르고 함께 넘어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정답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으로, 나의 아들이 의지했던 대상이 쓰러질때 적어도 혼자 균형을 잡고 버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나의 어린시절 나의 아버지도 나에겐 강철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모르는 것이 없고, 힘과 체력이 무한한 분이셨다.

하지만 어느 날, 함께 오르던 산 정상에서 깊게 몰아 내쉬던 아버지의 하얀 입김과 이마에 맺힌 땀방울.

그리고 푹 숙여진 허리,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가 이젠 나이가 드셨구나..




요코 오노(YOKO ONO)와 백아(伯牙)


흩어 놓은 이야기를 좀 정리를 해야겠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지했던 일부가 무너질 때 함께 기우는 것이 사람의 연약한 속성이다.


요코는 존 레논을 잃었고, 백아는 종자기를 잃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의지하던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뒤의 행보는 조금 다르다.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던 백아와는 달리 요코는 존을 기리며 계속해서 존과 함께 노래했던 평화와 꿈을 위한 예술활동을 해나갔다. 이것을 통해 존은 죽었지만 노래로서 영원히 살아있다고 그녀는 믿었다.

그녀 나름대로의 홀로아닌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조금 뜬금없지만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의지했다.

예수님이 군사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죽는 순간에는 제자들은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자신들이 의지하던 존재와의 단절을 앞에두고 모두가 숨거나 도망쳤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제자들은 원래 하던 사역을 그만두고 말았다.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신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모습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이후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이와같이 말씀하신 이후에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온 땅으로 흩어져 죽을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했다고 되어있다.


우리에게도 살다보면 이처럼 의지하던 사람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행보는 이와 같아야 한다.

물론 잠시 의지했던 그를 위해 애도하고 슬퍼해야 하나, 곧 털고 일어나 계속해서 가야할 길을 가야한다.

나의 아들 이레에게도 이와 같이 말해주고 싶다.


"좌절과 슬픔이 잠시 있겠지만, 계속해서 너의 갈 길을 가거라."



매거진의 이전글 무한상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