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1428>
3년전 저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온 국민,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 신종 바이러스로 팬데믹의 혼란에 있던 그 때, 저희 아버지는 병원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평소 목이 조금 불편하다 하시긴 했는데, 이게 후두암 때문일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내게도 생기는 구나 하며 망연자실해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항암치료를 준비하던 그때 설상가상으로 장모님까지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게 되셨습니다. 처음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전화기 넘어로 절규하며 흐느끼던 아내의 울음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절망적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아무런 어려움이나 문제도 없었고, 그저 화목했는데 한 순간에 모든게 무너져버렸습니다. 교통사고처럼 가해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이 그냥 주저 앉아서 울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무기력했지만, 견뎌내야했습니다. '지금 내가 무너지면 아내도, 아이들도 건사할 수 없겠다. 정신차려야지.' 라는 생각으로 이성을 붙잡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회사에 있다가도 때로는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 없고 힘이 들어서 몇번이나 회사 건물 밖으로 뛰쳐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야속한 시간은 계속 흘렀고, 오히려 저 보다 강인하셨던 아버님과 장모님께서는 꿋꿋하게 항암치료를 받고 세월을 견디어 오셨습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을 지내오면서 초반에 휘몰아치던 감정은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짧지 않은 기간동안 투병하며 힘겨워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며 가족들은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특히 어머님 항암 이후 검사결과가 호전되지 않으면 아내는 크게 낙담하며 힘겨워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아내를 위로하고 힘이 나도록 해주고 싶어서 선물도 사줘보고, 아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으며 기분전환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잠시동안 아내는 즐거워하다가도 금새 다시 침울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되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기도의 응답이 바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본 아내가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더 결단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기도제목은 아내의 마음이 믿음으로 견고해지고, 낙담하거나 염려함 없이 주 안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하며, 어머님을 괴롭게 하는 모든 암세포가 완전히 사멸되고 건강히 온전히 회복되기를, 그리하여 아내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모든 문제가 사라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다 보니,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나로 하여금 기도해야 할 제목들을 하나씩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전에는 모임을 하며 기도제목을 나누어도,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잘 기도하지 못하고 한 주를 그냥 보내거나,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항상 뒤로 미루었던 일들을 내 마음에 떠오르게 하셨고, 들었던 기도 제목들을 내 입술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다락방에 아픈 아기를 위해, 부모님이 수술하시는 어떤 집사님의 가정을 위해, 이직 준비를 하는 형제를 위해, 귀하게 섬겨주는 순장님 가정을 위해. 그리고 담임목사님과 교회 공동체를 향한 공통된 기도 제목도 제 마음에 선명하게 주시며 제 입술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 수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하나 어떻게 응답이 되며 어떻게 역사하실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역사해 가실 줄을 믿습니다.
최근에는 반가운 기도의 응답도 주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던 저희 아버지께서 6월부터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제가 교회오기를 청하여도 항상 '나중에, 나중에' 라며 한사코 고사하셨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설교 말씀 듣기를 궁금해하시며 교회에 오고싶어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매년 교회에서 태신자 작정을 할 때마다 첫 번째 이름으로 아버지의 성함을 정성스레 눌러 적었지만, 정작 그런 아버지를 믿음으로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제대로 된 기도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아내와 장모님을 위해 기도의 불씨를 키워가던 중, 제 마음에 아버지를 비롯한 아직 신앙없는 가족들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오셔서 함께 드리던 예배의 설교 말씀에서 민수기 14장 28절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비로소 내가 원하는 방법과 시기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그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한 가지 조금 놀랐던 사실은, 목사님이 인용하신 김진선 작가의 "하나님은 3등입니다"라는 글이 마치 제 이야기처럼 들렸다는 겁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지막, 최후의 수단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 꼴찌 기도에도 일등으로 답해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계속 기도의 불씨를 살려나갈 것 입니다
위대한 일은 느리지만 작은 일들이 여러번 이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는 "위대한 일은 느리지만 작은 일들이 여러번 이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라고 했습니다. 한 두번의 붓터치만으로는 그림이 완성될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단 한 번의 간절한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분이지만, 내가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일들은 매일 새롭게 생겨나기에 이제는 최후의 수단이 아닌, 모든 일에 가장 먼저 기도하며 시작하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 가려고 합니다. 제 삶 속 작은 기도의 불씨들을 통해 이루어가실 하나님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