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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May 20. 2024

함께하는 시간(Quality Time)

5가지 사랑의 언어(The Five Love Languages)

우리에게 낙(樂)은 무엇일까?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험상 '급여'와 '휴가'에 대한 갈급함은 많은 직장인이 느끼는 공통 분모이지 않을까. 급여(Salary)는 돈(Money)이라는 가치와 연결되는 것이니 두말 필요없고, 휴가(Vacation)는 아마도 개인의 시간(Time)과 연결지을 수 있을까 싶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라는 용어도 있듯이 개인의 시간을 보장받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일에만 치우치던 삶에서 자기를 위한 시간의 가치를 중요시 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결혼 전에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즐기곤 했다. 중학생 때 까진 개인 시간이라고 해봤자 내 방에 혼자 틀어박혀 게임하는 시간이 고작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일부러 멀리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거나,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가본 적 없는 골목길을 무작정 가보는 일로 소소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봤다. 대학생 때는 시간표를 내 마음대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공강(空講)시간을 길게, 많이 두어서 캠퍼스 이곳저곳을 살피기도 하고 서울시내 이곳저곳을 혼자 돌아다녔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궁궐을 돌아보는 일이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과 같은 공간을 좋아했는데 근처 직장인들이 많이 찾게되는 정오 즈음은 피하고, 어정쩡한(?) 시간에 가면 제법 한산한 궁궐의 정취를 방해받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 가끔 유치원생들이 소풍을 오긴하는데, 그 정도는 자연의 일부로 봐줄만했다. 궁(宮) 중에서도 창덕궁의 후원(後苑)에 가는 걸 특히 좋아했다. 최근엔 가보질 못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창덕궁 후원은 혼자서 들어갈 수 없었고 시간대별로 티켓팅을 하면, 안내해주시는 가이드 선생님을 따라서 들어갈 수 있었다. 숨겨진 정원이라고 해서 '비원(秘苑, Secret garden)'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곳의 정취에 매료되어 한 동안은 매주 갈 정도로 좋아했었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가끔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처 한적한 곳을 찾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을지로에 근무할 때는 정동, 인사동, 삼청동, 남산, 청계천까지 두루 잘 돌아다녔던 것 같다.


휴가(休暇)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나도 휴가 만큼은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써본 일이 거의 없다. 취업을 하고 1년쯤 뒤에 바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결혼 준비를 위한 휴가가 대부분 이었고, 곧바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이후에는 육아스케줄에 따라서 휴가를 써야했다. 어느덧 직장생활 12년차가 되도록 아무 이벤트 없이 단지 늦잠과 여유를 위해 휴가를 쓴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가 바로 지난 주, 그 목적을 위해 연차휴가를 내봤다. 휴가를 내고 아무일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실 휴가의 목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내와 함께 햇살 좋은 날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아내와는 결혼 전 5년 정도 연애를 했는데, 그땐 둘이 손을 잡고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굳이 경치가 좋거나 멋지고 화려한 이른바 '핫플(Hot Place)'이 아니어도 둘이 한적한 곳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런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져서 포기하고 지냈는데, 이제 두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고보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는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둘이서 인근 쇼핑몰도 돌아보고 공원도 한바퀴 돌았다. 별거 안했는데 벌써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되었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 굉장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우리의 허기짐을 채워주는 것은 더이상 옷이나 가방같은 선물도 아니고 줄서서 먹는 맛집의 일품 요리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손을 잡고 걷는 것 만으로도 사랑의 배터리는 이미 가득 충전되었다.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

영화 스타워즈로 잘 알려진 배우 애덤 드라이버(Adam Douglas Driver, 찰리 役)와 어벤져스의 블랙위도우, 스칼렛 요한슨(Scarlett Ingrid Johansson, 니콜 役)이 주연을 맡은 영화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 2019년 개봉)'는 이혼의 과정 가운데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혼의 사유는 흔한 '성격차이'이며 여전히 서로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남아있어서 이혼 소송의 과정 중에도 처음엔 상처주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쓰는 모습들이 비춰진다. 각자의 이혼전문 변호사들에 의해 상대방의 마음을 할퀴게 될 때면 본인이 더 괴로워 하고 마음아파하기도 한다. 심지어 둘 사이에는 초등학생 아들 헨리까지 있어서 이혼의 절차가 쉽지 않은 가운데, 서로 지쳐가고 나중에는 홧김에 마음에도 없는 말들로 서로 상처를 입히게 된다.


난 매일 눈 뜰 때마다 당신이 죽길 바라!


이들은 결국 이혼서류에 서명했지만, 영화는 그 이후의 관계까지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모습이다. 이들에게 이혼의 과정이 속 시원한 결론이 아닌 왜 그리도 어렵고 복잡하고 마음아픈 과정이었는지에 대한 해명과도 같은 분량이며, 이 영화의 제목이 '이혼이야기(Divorce Story)'가 아니라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부터 나타난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이다. 그냥 팬으로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며 기댈 사람을 찾아 가정을 이룬 결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다툼이 있을 때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도 더 잘하게 되는 것 같다. 이혼 후 서로 떨어져 지낸 시간은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겠지만, 우연한 기회로 다시 재회했을 때 짧은 만남과 트리거(Trigger)가 되어줄 무언가만 있으면 서로를 향한 경계심은 한 순간 무너져내린다. 영화에서 그 트리거가 되어준 매개물(物)은 니콜이 예전에 썼던 편지였다. 제목은 '내가 사랑한 찰리'. 그 편지를 두고 찰리와 니콜의 모습이 엇갈린다.

니콜이 쓴 편지 '내가 사랑한 찰리'를 읽는 찰리과 그것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니콜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 2019>


함께하는 시간

두 사람의 관에 매개물이 있어도 이것이 역할을 하기 위해선 매개물의 영향을 받는 겹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멜로 영화에서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매개물을 등장시키기도 하지만, 결국은 두 사람을 이어줄 뭔가가 필요하고 나와 내 아내에게 있어서 그것은 함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면 함께 있는 공간이 매개가 되어 두 사람의 시간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사랑의 언어들이 있다고 하지만 함께 할 수 없다면 사실 그 어떤 언어가 무슨 소용일까 싶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더 자주 휴가를 내어 아내와의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다른 이유나 목적이나 계획 없이 오로지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만을 위한 휴가를 계속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게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니콜과 찰리가 함께했던 시간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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