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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May 16. 2024

어버이 스승

디모데전서 6:11-14

(디모데전서 6:11-14)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

지난 주일,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스승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을 주는 존재’라는 말이 멤돌았다. 나는 내 삶 속에서 내 어버이의 '자식'이기도 하고 내 자녀의 '어버이'이기도 하며, 동시에 '제자'이기도, '스승'이기도 하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정규 학습시간이 마무리 되고 학교 급식실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나면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었다. 정규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자율’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 학생들에게 참여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선 사실상 '강제 학습'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많이 있었지만,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시간일 뿐, 참여자체에 대해서는 의무가 부여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여하튼, 이 자율학습시간에는 선생님들도 교실에 남아계시지 않고 교무실에서 다른 집무를 보시다가 이따금씩 ‘사랑의(?) 매’를 들고 복도를 순찰다니시며 태도가 바르지 못한 친구들을 지도하셨다. 때론 선생님들이 복도나 교실에 의자를 가져다두고 앉아서 책을 보시는 때도 있었는데, 이럴땐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지 않으셔도 다들 바르게 앉아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저 조용한 교실 안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의 존재감이란 이런 류의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냥 근처에 계시기만 해도 면학(勉學)분위기를 조성하는 존재감!


그러나 목사님이 말씀하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스승’ 이란, ‘산(山)’과 같은 존재를 의미다. 산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로 하여금 찾아오게 만들며, 오르게 만들고, 성장하게 하는 존재이다. 물론 입도 꾹 닫고,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本) 받을 만한 존재로말과 행동으로 타(他)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효학반(斅學半)

사실 내가 생각하는 스승이란 가르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지식을 가르치거나, 자세를 가르치거나, 올바른 태도에 대해 지도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을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도 성장하는 유익이 있는 이른바 ‘효학반(斅學半)’이 나에게는 교육철학과도 같았다.

惟斅學半  念終始 典于學  厥德修罔覺
유효학반  염종시 전우학 궐덕수망각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니, 시종 배움에 전념하면 알지 못하는 중에 그 덕이 닦여질 것이다.'

중국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 토목공사 일꾼에서 재상으로 등용된 부열(傅說)이 자신의 군주에게 배움에 대하여 훈고(訓告)하는 내용으로서 풀어 해석하면 "배움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험에서 비롯한 바, ‘효학반’도 틀리진 않았으나 이것은 가르침을 주는 자의 입장에서 얻는 유익이며, 배우는 입장에서는 관점을 조금 다르게 살펴볼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승과 제자 간에도 상성(相性)이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누군가에겐 좋은 스승이 또 다른 이에겐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바울은 어떤 스승이었을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매우 강한 어조로 명령하듯 당부한다. 혹은 당부하듯 명령하는 것 같기도 하다. 디모데가 그의 사역을 시작하는 때에 바울은 그에게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명확하고 타협없는 어조로 내용을 전달한다.


바울이 당부한 것은 4가지인데, 1)피할 것과, 2)따라야 할 것, 3)맞서 싸울 것, 4)반드시 취해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각각의 동사에 대한 목적어는 본문에 있지만, 나는 이 4가지 동사에 좀 더 집중하고 주목하게 되었다. 보통의 스승은 이 4가지 안에서 제자를 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게 스승은 제자에게 경험에 대해서는 피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품에 대해 따라야 할 것을 강조하며, 경쟁하며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맞서 싸우도록 용기를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바라보게 하는데 이것을 비전이라고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취할 것, 곧 비전을 영생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 땅에서의 영원한 삶이 아니라 하늘 소망을 의미한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위의 4가지 중에서 '취할 것'에 대해 지식적으로 전달하는데에 많이 치우쳐있던 것 같다. 이번 말씀에 비추어 나 스스로를 점검해보며, 어버이 혹은 스승으로서 아이들에게 골고루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로서만 아이들에게 전하기보다는 행동으로서, 삶으로서 아이들에게 본(本)이 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알파치노(Al Pacino)' 주연의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표상(表象)이 잘 드러나는데, 극 중 알파치노(프랭크 슬레이드 중령 役)가 곤경에 처한 학생을 위해 대중 앞에서 한 연설이 인상적이다. 알파치노가 연기한 프랭크의 삶은 투박하고 상처투성이였지만, 일면식도 없었던 어린 학생이 어른들의 힘과 위협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상처입는 처절한 모습을 가만히 두고보지 않고 직접 나서주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의 정의로움은 대중에게 박수를 받았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치는 듯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의 뒷 모습에서 여전히 자신의 상처는 치유받지 못한 채 쓸쓸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라면 자신이 쓰러질지언정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젋은 세대를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이른바 ‘이대도강(李代桃僵)’의 정신을 보여준 프랭크 중령의 행동과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난 어버이이고 스승일텐데, 언제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고, 아이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기꺼이 나서서 도울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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