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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Jul 21. 2016

헛제삿밥 : 여씨춘추[呂氏春秋] - 귀공(貴公)

사사로운 이기심을 이겨내는 유생들의 지혜

야식(夜食)

밤이 되면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 모르겠다.

어릴적에는 하도 배고프단 소릴해대서, 아버지는 '네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보다' 하시면서 나무라셨다.

하지만 아무리 저녁을 배터지게 먹어도 9~10시 쯤이 되면 어김없이 뱃속에서는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밥 한 그릇을 차려주셨는데, 별거 없이 그냥 집에 있는 찬 몇가지 혹은 달걀후라이에 간장을 조금 넣고 쓱싹 비빈 비빔밥이었다.

나는 고추장을 넣었으면 했지만, 잘 밤이라며 덜 자극적으로 먹으라며 차려주셨다.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저녁을 먹고 밤이 되면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낀다.

나의 몸이 예전같지 않아서 활동량이 많던 20대 청춘때는 아무리 먹어도 뱃살이라는게 생겨본 적 없는 축복받은 몸이었는데, 지금은 한 번 늘어난 뱃살이 줄어들지 않는 마법에 걸려버렸다.

심지어 매 해마다 바지를 새로 사야할 정도로 꾸준히 허리 사이즈가 늘고 있어

"더이상 안되겠다, 야식을 끊어야겠다" 라는 결심까지 하게 만들었다.

물론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렇게 야식을 참아오던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다.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 나의 야식과 무슨 상관일까 할 수 있겠지만

임산부는 가끔씩 밤에, 새벽에 먹고 싶은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이 먹는 것은 아니다. 뱃 속의 아이가 신호를 보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나는 이 기회에 아내의 선비정신을 어렴풋이 느꼈다.


선비정신이라고 하기엔 좀 우습지만,

아내는 늘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때,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만 말을 해줬다.

본인도 몸이 힘든 임산부이면서 나를 나름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 마음으로 느껴져서 고마웠다.

물론 야식을 끊겠다고 결심했지만, 아내와 가끔 먹는 정도야 뭐 나에겐 즐거운 일이었다.

지나친 야식은 건강에 독이 되겠지만, 가끔 즐기는 야식은 너무나 즐겁다.



헛제삿밥

조선시대에는 유생이라는 계층이 있었는데, 이들은 유교를 신봉하고 유교의 도덕을 실천하며, 한자를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아는 식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시대의 상위계층을 형성하였으며 전체인구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많아졌다. 주로 서울 유생과 지방 유생으로 구별이 되었지만,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것에는 차별이 없었다.

서울 유생은 성균관 유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한 때 송중기씨가 출연했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나온 공부하는 학생(?)같은 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지방에는 향교를 중심으로 유생들이 모였는데, 안동의 도산서원과 같은 곳은 그 중에서도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큰 무리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안동의 도산서원에 가면 '선비문화체험'이라고 해서 예절과 도덕에 대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데, 내가 신입사원일 때, 한 번 가본 경험이 있다. 유생들이 입던 옷을 입고 인사법이나 배웠던 글을 한 번 읽어보며, 충분하진 않지만 선비들의 마음가짐을 조금이나마 배워볼 수 있는 경험이다.


옛 경북 안동 지역의 유생들은 늦은 시간까지 글을 열심히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밤 늦게 공부를 하다가 배가 출출하여 밤참을 먹고자 하였으나,

쌀 밥이 귀하던 시절..
밤에 밥을 지으면 밥 짓는 연기가 솔솔 피어나고..

크지 않던 마을에 온통 음식 냄새가 퍼져나가게 된다.


늦은 시간에 불을 환히 밝혀두면 지나던 마을 사람이나 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대문간에 기웃기웃 하는데, 그러면 그들을 불러 앉혀두고 함께 밥을 먹었다.

이는, 서민들이 귀한 쌀밥을 먹고 싶어도 가난하여 먹지 못하였는데,

유생은 마침 자신도 배가 고프기도 하지만 그러한 서민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인냥 상을 차리고 음식을 많이하여 이들과 함께 음복하며 밥을 먹은 것이다.

이에서 유래한 것이 안동의 "헛제삿밥"이다.

명분이 제삿밥이다보니, 담백하고 고춧가루가 비교적 들어가지 않은 음식들로 상을 차려내었다.


남을 배려하다 보면 다소 늦을 수도 있고, 조금 더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유생들의 선비정신인 것이다.


<안동 도산서원의 유생들 : 선비문화체험 중인 나의 동기들^^>


함께 나눔을 귀하게 여기다 - 귀공(貴公)
荊人有遺弓者 而不肯索 曰 荊人遺之 荊人得之 又何索焉?
어떤 초나라 사람이 활을 잃었는데, 찾으려고 하지 않고서 하는 말이 "초나라 사람이 활을 잃고 초나라 사람이 활을 주워가질 테니 상관없다. 또 어찌 그것을 찾겠는가."라고 했다.

孔子聞之曰 去其荊而可矣 老聃聞之曰 去其人而可矣 故老聃則至公矣
공자가 그 말을 듣고서, " '초나라'란 말을 빼면 더 옳겠구나."라고 했다.
다시 노자가 그 말을 듣고서, " '사람'이란 말을 더 빼면 더 옳겠구나."라고 했다.
고로 노자의 사상이 전체가 함께한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

天地大矣 生而弗子 成而弗有 萬物皆被其澤得其利 而莫知其所由始 此三皇五帝之德也
천지는 위대하다. 사람을 낳고도 자기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 만물을 만들어 놓고도 자기 소유로 여기지 않는다. 만물이 모두 그 혜택을 입고 이득을 얻으나 그 유래하는 바를 모르니, 이것이 삼황오제의 덕이다.

중국 전국(戰國) 말기의 대상인이자 정치가였던 여불위(呂不韋)가 선진 경전 및 제자백가를 집대성한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기록된 예화로, 십이기(十二紀) 맹춘기(孟春紀) 편에 소개되어있다.


공자와 노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어찌보면 둘 다 사사로운 것을 배제하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인 사상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범주에서 차이가 난다.

원래 사건은 손해를 보고 이득을 보는 자도 모두 초나라 사람이기에, 초나라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손해도 아니고 이득도 아니며, 모든 자원과 물자를 나라 안에서 함께 공유하는 것이 옳다라는 관점이다.


이에 대한 공자의 견해는 손해와 이득을 공유하는 범주를 초나라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로 확대하여 누구든지 손해를 보고 이득을 보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것이 옳다라는 관점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손해를 봐도 누군가 이득을 볼테니, 범인륜적 사상으로 볼때에 개인의 손익을 사사롭게 볼필요가 없다라는 철학이다.


반면에 노자의 견해는 손해와 이득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에서 만물, 곧 천지(天地)로 확대하여 해석하였다. 누군가 손해를 본 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혹 나무이든 어느 곳에는 이득이 될터, 손익을 공유하는 대상이 사람과 사람을 넘어서 모든 자연만물에 끼친다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따라서 여불위는 이 둘의 예화를 통해 노자의 포용력이 공자의 것보다 더 크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은 공자와 노자 모두 인간의 사사로운 손익보다는 함께 나눔을 강조하였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큰 목공은 잔 기교를 보태어 다듬지 않고
큰 요리사는 상차리는 일까지 맡아 하지 않으며
큰 용사는 직접 칼을 휘둘러 싸우지 않고
큰 군대는 백성을 해치지 않는 법이다

- 여씨춘추(呂氏春秋) 맹춘기(孟春紀) 中 -



게하시[Gehazi]의 타산지석(他山之石)

성경에도 이와같은 이야기가 여럿 소개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말렉왕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양'과 '소'를 전리품으로 취하였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 왕(삼상 15:1-15)

자기 소유를 팔았으나, 거짓으로 헌금하였다가 죽임을 당한 아나니아와 삽비라.(행5:1-11)

이들 모두 하나님 안에서 충분히 복을 누릴 수 있었으나,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에 눈이 멀어 징계를 받은 자들의 표상이다.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더라"

-왕하 5:27-


게하시[Gehazi]

그는 엘리사 선지자의 시종으로서 성경에 기록된 바,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에 눈이 멀어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은 또 한명의 인물이다.

북이스라엘 여호람 왕이 통치할 때에 아람군대를 다스리던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려 고생하던 중 선지자 엘리사가 요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에 이에 순종하여 병이 나았다.

이에 감사의 뜻으로 엘리사 선지자에게 사례하려 하지만 엘리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예물을 거절한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엘리사 대신 그의 시종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을 찾아가 뒤로 몰래 선물을 챙기다 결국 나병에 걸리는 징계를 받게 된다.(왕하 5:1-27)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은 항상 큰 일을 그르치고, 복을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욕심을 이겨내고 나눔과 이타적인 모습을 보일 때에는 그만큼 공동체가, 사회가, 나라가 윤택해 질 것이다.



지혜로운 아내

아내의 배려의 감사한 마음에서부터 주절주절 시작하게 된 이야기지만,

살아보니 아내는 참 이타적인 사람이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욕심을 참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것이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배운다하여도 지식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장인, 장모님의 모습에서 나는 지금 아내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다.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그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부모로, 지혜롭게 성장하고 싶다.




<배경 설명 : 구 천원권 지폐의 도안이었던 "안동 도산서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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