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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Jul 28. 2016

유아 열경련

아빠와 엄마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경험

1. 열이 39도

몇일 전 회사에 인사이동이 있었다.

인사이동과 동시에 사무실 전체를 이사했다. 같은 층 다른 위치로 책상과 컴퓨터 온갖 사물을 들고 이동해야 했다. 집을 옮기는 것에 비하면 작은 일이지만, 책상 서랍 속 온갖 물건을 다 꺼내어 박스에 담고 정리하는 일은 정말 귀찮은 일이다. 특히 내 자리에는 컴퓨터가 3대나 있어서 이 엉퀴고 설킨 전선들을 풀고 다시 연결하는 일은 이 삼복 더위에 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6개월에 한번씩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살림을 늘리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하지만 지내다 보면 점점 살림살이가 늘어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여튼 하루종일 옮기고 닦고 연결하고 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먼지를 실컷 먹고 지칠대로 지친 나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나의 비타민이 있는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현관문 비밀번호를 '띡띡띡' 누르면 그 소리만 듣고도 아들 이레는 

"아빠아아아아앙~!"

하며 현관으로 뛰어나온다.

그런데 왠일인지 이 날은 이레가 뛰어 나오지 않았다.


"이레가 컨디션이 좀 안좋아요, 열이 좀 있네요."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침대에 앉아 만화를 보고 있는 이레를 쳐다보며 나에게 말했다. 

이레에게 하루 전부터 미열이 있었다. 귀에 대는 전자 체온계로 온도를 1시간 간격으로 재었고, 38도 이상이 넘어가면 아내는 이레의 옷을 벗기고 겨드랑이, 목 등의 접히는 부분을 미지근한 물로 적신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이마에는 열을 내리도록 도와준다는 열패치를 붙여주었다. 하지만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았다.

해열제를 먹이면 다행히도 37도 까지는 내려갔지만 약효가 떨어질 시간쯤 지나면 다시 열이 올랐다.

하루 동안 이런 일을 반복하다보니, 아이도 체력이 고갈되어 지친 것이다.




2. 아내의 눈물

다음 날,

사무실 이사 직후 인데다가 인사이동으로 팀장님이 바뀌셔서, 새로이 업무보고를 하느라 분주한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정신없이 해치워야 할 일들을 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은행 업무 특성상 점심시간에도 고객을 상대해야하는 업무가 많다보니 2교대 혹은 3교대로 점심식사를 해야하는데 이날 나는 2차로 식사를 하러 가는 당번이었다.

1차 식사조가 식사하러 나가던 그 때, 휴대폰으로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는 업무에 방해를 받을까봐 특별한 일 아니면 먼저 전화를 하지 않던 아내였기에, 아내가 전화를 한 것만으로도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구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보, 이레가 이상해요.

  약을 먹이고 뉘였는데, 몸이 축 쳐지고, 눈에 촛점도 없고, 입술도 파랗게 질렸어요.

  불러도 애가 반응이 없어요.

  일단 택시 타고 빈센트병원으로 좀 가보려구요."


"응, 알았어요. 여보."


아내가 말한 증상을 들었을 때, 덜컥 겁이 났지만 일단 알았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팀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나도 회사를 나섰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가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레는 좀 어때요?"


"얼굴색은 괜찮아 졌는데, 여전히 좀 쳐져있어요."


어디 쯤을 가고 있는지 확인한 뒤, 나도 급히 차를 달려 병원 응급실에 도착을 했다.

아내는 쳐진 아이를 끌어안고 의사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레는 아무래도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내가 아이를 넘겨 받았다.

아이의 상태와 증상에 대한 의사선생님의 질문에 아내가 하나씩 답변을 했다.

문진이 끝나자 의사선생님은 아무래도 열경련인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열경련'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검색을 해보니 요즘같이 고온다습한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 혈액 속에 염분과 수분이 부족하게 될 경우 근육경직과 발열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유아의 경우 더운 날씨에 발생할 수 있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라고 나와있었다.

다만 이레에게 나타났듯이, 눈에 촛점이 없고(눈이 돌아가기도 함), 몸이 경직되거나 축 쳐지고, 입술이 파랗게 질리는 등의 다소 험악한(?) 증상 때문에 처음 겪는 부모들은 크게 놀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쨌든 몸에 열이 발생하는 원인부터 찾기 위해 혈액 검사와 엑스레이 등 간단한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수액을 맞으며 잠을 자는 이레를 안고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열은 내려서 더이상은 오르지 않고 있었고, 나는 이제 좀 안심이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때까진 침착하게 의사, 간호사와 소통을 하며 분주히 움직이던 아내가 조용히 내 품에 안기더니 눈물을 흘렸다. 내 품에 안긴 이레가 혹시 깰까봐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조용히 숨죽여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안아 주었다. 오른 품에는 이레를 안고, 왼 품에는 아내를 안았다.


얼마나 놀랬을까,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이레만 걱정하며, 이레만 살피던 나의 눈에 그제야 마음 고생심했을 아내가 들어왔다. 아내의 마음을 진작에 살피지 못했던 것이 너무 미안했다. 행여라도 아이에게 큰 일이 생길까봐, 그 아이를 안고 다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왔을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다행이야, 정말, 이레가 괜찮아서.."


잠시 흘렸던 눈물을 닦고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정말 씩씩한 사람이다. 여자이지만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직한 성품을 가졌다. 그런데 이렇게 눈물을 쏟는 걸 보니, 정말 마음이 급했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수액 맞고 있는 이레 ㅠㅠ 아프지 말아라..>


3. 참으로 다행이지만...

다행히 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었다. 혈액에도 염증수치가 정상이었고, 엑스레이 상에도 특이점은 없다는 진단 결과를 받았다. 너무 감사했다. 다만 편도선이 조금 부어 약간의 염증이 있으니, 약으로서 그것만 다스리면 아이가 곧 회복될거라는 의사선생님의 처방이 내려졌다. 우리는 약을 받아 이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레 동생 이안이와 함께 집에 계시던 장모님도 그제야 마음이 놓이셨던 모양이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이레의 상태를 걱정하고 궁금해하셨을 장모님께도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이레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염증이 다 잡히고 나자, 더이상 해열제를 먹지 않아도 열이 오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이레가 아플때에도 놀기는 참 잘 놀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레는 잘 논다.

잘 노는 이레의 모습을 보며 아내와 이야기를 했다. 지나고나서 보면 정말 별일 아닌데,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닌데 늘 우리는 일이 닥쳤을 땐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다. 평소 우리가 먹고 살만 할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기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아팠을 땐 기도가 터져나왔다. 죽을 병 아니었지만,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그것은 아내와 내가 동감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만 필요를 채워주는 용도로만 하나님을 찾는 반쪽짜리 크리스천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언 30:8-9)



성경의 잠언에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는데, 주기도문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가 들어있다. 일용할 양식은 말 그대로 하루치의 양식을 의미한다. 왜 평생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하루 먹을 것을 구하도록 가르치셨을까. 그것은 우리에게 평생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지면 나태해지며 이것에 대한 감사는 커녕 하나님에 대하여 잊고 교만에 빠져 살아가게 되는 인간의 나약함을 아시기 때문이라.


'나는 그렇지 않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사람은 연약하고 동시에 교만하여 받은 호의를 쉽게 잊지만, 입은 피해를 쉽게 잊지 않고, 받은 은혜를 너그럽게 생각하지만 베풀어야 할 선의에 인색하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수고에 대하여 평생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오히려 부족하다 불평하는 모습도 그러하다.




4. 일상으로의 복귀

우리 가정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했다. 아내와는 다음 달에 있을 이레의 두돌 생일을 챙기느라 이것저것 의견을 주고받으며 분주한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컴백했다.

그런데 몇일이 지나고 나서야 이레가 아프던 날, 우리부부 절친의 결혼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뿔사..'

이레가 아팠었으니, 당연히 이해해줄거라는 생각은 우리들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물론 그들이 이해를 해주지 않을만큼 옹졸한 이들은 아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커플이다. 하지만 우리가 결혼식을 할 때에도 우리는 같은 경험을 이미 했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 잘 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서로가 이해해줘야 할 문제이지만, 결혼식 당사자에게는 서운한 일이다. 


특히, 

'나는 너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해줬는데, 너는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니!! 그것도 연락도 없이 말이야...!!'

라는 문제는 자칫 친구 사이 우정에 금이 갈 만큼 심각해지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크리스천으로서 일상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주변 사람들, 친구들과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일상의 감사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아야 할 때를 지나치지 않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금 한창 허니문을 즐기고 있을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때 즈음엔 꼭 잊지않고 사과와 진심어린 축하를 해줘야겠다. 아울러 건강한 일상을 하루하루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매일 감사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우리 아들 이레, 딸 이안이 모두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아내도 늘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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