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주영 Dec 05. 2016

너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분을 삭히는 예수님의 방법

1. 아이를 혼내는 실수

흔한 일이었다.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평소와 다름 없던 주말 저녁 나는 거실에 앉아,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 때,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여보, 포도 좀 씻어서 이레랑 같이 먹어요. 나는 이안이 좀 씻기고 있을게요."

주방 싱크대 안 작은 그릇에는 아내가 물에 담가 놓은 포도 한 송이와 그 위에 뿌려진 베이킹 파우더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씻어 떨어진 포도알 하나하나 물기를 털고 그릇에 옮겨 담고 있었다.

그 때 였다.  

"우당탕"

뒤를 보니 이레가 서 있었고, 이레 앞으로 아직 씻지 않은 포도 송이들이 나 뒹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레에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강한 어조로 나무랐다.

"이레야! 너 뭐하니! 얼른 주워담아!"

화가 난 나의 목소리를 들은 이레는 그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얼음이 되어 제자리에 서서 손가락만 만지작 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뭐해, 얼른 주워 담지 않고!"

그제야 이레가 자리에 쪼그리고 않아서 떨어진 포도알을 줍기 시작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이레는, 그거 식탁에 올려 놓으려다가 떨어뜨린거에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나는 이레가 포도를 씻는 동안 그것을 못 기다리고, 먼저 먹으려고 하다가 떨어뜨린 줄 알고 나무란 것이다.

그 때문에 이레는 본의 아니게 아빠에게 혼났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28개월 아가는 그 억울함을 제대로 해명조차 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얼마나 울었을까.


밤이 되어도 미안한 마음 주체하지 못하고 잠든 이레의 이마를 쓸어 넘기며 다시는 이렇게 화내지 말아야지, 이렇게 묻지도 않고 나무라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다짐했다.


2. 순간적인 분노를 참아내기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오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일이다.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갑작스런 위협운전을 당할 때면 나도 모르게 욱! 할때가 종종 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당황스럽게 하거나, 순간순간 욱하게 만드는 일 앞에 차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성경에서 예수님이 분을 내시는 것에 대하여 기록한 장면이 있다.

그것은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성전 청결사건" 이다.

사건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방문하셨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 회개하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성전이었다. 당시 회개의 제사를 드릴 때 죄를 전가하는 대상으로 염소, 비둘기 같은 가축을 바쳤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제물로서 제사를 드려야 하지만, 먼 길에서 오는 이들은 오는 동안 가축이 죽거나 다쳐 흠이 생기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그래서 성전 주변에는 늘 깨끗한 동물을 파는 상인들과 이 제물을 사기 위한 돈으로 환전해주는 환전 상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조용하고 거룩해야 할 성전이 지저분하고 더러운 동물들과 시장 상인들의 소리로 어지럽게 되자, 예수님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에 분을 느끼셨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집이, 이렇게 어지럽혀져 있는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다.

예수님은 마음에 분을 느끼셨지만 바로 화를 내지 않으셨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요한복음 2장 15절

예수님이 먼저 하신 일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는 일이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는 일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아주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화를 삭히는데에는 충분한 시간 이다. 사실 화가 났을 때는 만들어진 채찍을 가지러 가는 것도 심적으로는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우발적 범죄라는 것은 이렇듯 순간적인 화를 참지못하고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었을 때 발생한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 사이에 유행처럼 가지고 계시던 것이 있다.

지금 학생들에겐 어쩌면 생소할 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랑의 매' 였다.

학부모님들 중에 목공소를 하시는 분께서 새학기가 시작하면 언제나 50cm 정도 되는 나무막대기 100개를 기증해주셨다. 당시 우리에겐 재앙와 같은 이벤트였지만, 당시 도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 막대기에 '사랑의 매'라는 글자를 써 놨다고 해서, 내 마음의 분을 삭힐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체벌을  반드시 이 '사랑의 매'로만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거든.. 그리고 내 책상 가장 깊숙한 곳에 이걸 놓아 둘거야.."


나는 당시에는 선생님의 말씀의 뜻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비로소 자녀를 양육하다보니 조금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가장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놓은 사랑의 매를 찾는 동안 그 마음에 순간적인 화로 인해 선을 넘었던 분의 강도가 점차 사그러드는 것이다. 원칙을 세워놓고 체벌을 하는 것은 진정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최대한 인간적인 분노를 죽이고, 훈육의 목적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선생님의 최소한 노력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예수님도 그러하셨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다.

그 모습을 상상해보라. 맨 손으로 해도 될 일을 굳이 앉아서 노끈을 꼬며 채찍을 만들고 계신다. 화도 나고 눈으로는 노려보고 있지만 노끈을 만지며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적절한 강도, 효과적인 수준에서만 화를 표출하신다.


3. 참을 인(忍)이 세 번이면..

어려서 내 동생은 화를 내는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오빠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데, 오빠도 공책에 써 봐."

동생의 공책에는 참을 인(忍)자가 참 많이 쓰여 있었다. 아무래도 화가 난 적이 많았나보다. ^^;;

참을 인(忍)이라는 글자는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에 칼날 인(刃)이라는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진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미움과 분노를 칼로 잘라내어 버리라는 의미다.


중국 역사에도 잘 참는 덕으로 기억나는 인물이 있다.

중국의 여황제 측천무후가 가장 신뢰하였던 인물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에게 친숙한 적인걸이라는 명재상이었다. 하지만 그를 그 자리에 추천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누사덕 이라는 인물이었다. 적인걸은 누사덕이 자신을 추천한 사실을 모르고 오히려 그의 능력을 업신여기며 경멸했다. 하지만 누사덕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후에 적인걸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고 경멸을 당해도 쉽게 화를 내지 않는 누사덕의 덕을 본받아 명재상이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누사덕의 동생이 높은 자리에 임명되어 부임하였을 때 그가 동생을 불러 물었다.

"능력에 비해 높은 자리에 임명 되었으니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그에게 대답했다.

"누군가 제 얼굴에 침을 뱉어도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겠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그러자 누사덕은 동생에게 말했다.

"누군가 얼굴에 침을 뱉는다는 것은 그가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것을 닦는다면 그가 더 크게 화 날 것이다. 침은 닦지 않아도 마르니, 가만히 웃으며 상대를 대하여라."

타면자건(唾面自乾) 이라는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였다. 인내와 포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처세에 필요한 덕목이다.


4. 연습운전면허

얼마 전에 와이프가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기시험을 치르고, 기능시험을 합격하면 "연습운전면허"를 발급받게 된다. 마지막 관문인 도로주행을 시험 보기에 앞서, 자격을 갖춘 동승자와 함께 실제 도로에서 주행 연습을 하도록 허가 받은 라이센스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운전 면허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도로 주행 시험을 치르고 합격해야만 정식으로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이후에는 바로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연습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을 때 충분히 연습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장 4절)


모든 일에 이처럼 연습기간이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부모 자격에 대해서는 연습이 없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아니 아이가 뱃 속에 자리를 잡는 그 순간부터 부모는 아무런 연습을 거치지 못한채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바와 다름없는 실전에 던져진다. 그래서 때로는 서툴고, 실수하고, 자책한다. 아이를 울리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자녀를 양육하는 지혜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잘 알려주고 있다. 에베소서 말씀에서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여기서 "노엽게하다"라는 말은 영어 exasperate (몹시 화나게 하다) 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이것은 자녀가 잘못한 것에 대하여 정당하게 혼내기보다는 그것과 상관없이 그의 분을 일으키는 말을 하거나, 잘못한 정도를 넘어선 체벌에 따라 그 마음에 분이 일어나는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초보 아빠지만, 나도 이제 부모다. 연습없이 왔지만 실수는 내 아이에게 치명적이다. 큰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정신차려야겠다. 자칫 나의 잘못된 언행과 실수로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렵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양육해 나가며 많은 원칙들을 앞으로도 세워가겠지만 마음에 분을 삭히는 것을 위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는 나만의 시간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으로 아들 이레와 딸 이안이가 바르고 참되게 자라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나님은 왜 총을 쏘는 자의 방아쇠를 멈추지 않으셨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