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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Feb 16. 2017

어린 아이의 마음

사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Sold Out... 

1.헐리웃

  내가 어릴 적엔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극장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아 많지도 않았고, 갈 기회도 많이 없었다.

그 시절 "영화"라고하면, 공중파 방송에서 "주말의 명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영해주는 작품들이 전부였다.

공채 성우분들의 익숙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듣는 인디아나존스 같은 영화들은 분명 좋은 평가를 받은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선택할 수는 없었고 그저 편성표대로, 송출해주는 방송을 시청할 뿐이었다. 다만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매월마다 영화 순위표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걸 토대로 500원씩 내고 영화 비디오 테이프 하나씩을 대여해다가 집에서 보곤했다. 더빙 아닌 원래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자막을 따라가랴, 장면 따라가랴 바쁘게 눈동자를 굴려야 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비디오를 통해 많이 접했던 장르는 액션.

그 중에서도 아놀드 슈왈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라는 배우가 출연한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여러번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외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나의 외할머니께서는 영화를 무척 좋아하셨다. 특히 화려한 헐리웃 영화를 사랑하셨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를 사로잡은 배우가 바로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제네거였다.


"I'll be back" 하며 아놀드 슈왈제네거 스스로 용광로로 들어가던 터미네이터의 최고 명장면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정치에도 입문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미스터 올림피아 보디빌더 우승자답게 굉장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거친 외모 덕에 주로 액션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휴머니즘, 드라마, 코믹, SF, 공포 등 배우로서뿐만이 아니라 연출가로서도 다양한 장르의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정말 재미있게 봤던 [SOLD OUT] 이라는 영화가 있다.


2. Sold Out!

  1996년 개봉한 이 영화의 원제는 "Jingle All The Way" 이다. 솔드아웃이라는 제목은 아마도 한국 개봉 당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여튼, 이 영화의 장르는 "액션,가족,모험 그리고 코미디" 이라고 되어있다. 내용을 보면 크리스마스에 아들에게 선물할 최고의 인기 장난감, 터보맨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니는 웃지못할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정말 웃지못할 영화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에이 저게 말이되나, 저럴리가 있다." 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인기가 많은 장난감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걸 사기 위해 백화점이 문을 열기 전부터 부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문을 열자마자 장난감코너까지 전력질주해서 마치 미식축구에서나 나올법한 다이빙으로 터치다운 하듯이 그렇게 달려들어 장난감을 사려고 할까? 이건 너무 과장된거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장면중에는 이러한 모습도 있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문제의 그 장난감 '터보맨'을 퀴즈 상품으로 내 건 것. 그러자 청취자들이 퀴즈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급기야 라디오 방송국으로 쳐들어가 DJ를 때려 눕히고 장난감을 빼앗으려 한다. 

"내거야~!"를 외치며 터치다운 하시는 아버님들^^;;

사실 코미디 영화이다 보니 적어도 당시에는 일부러 과장된 장면들로 웃음을 유발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당시에는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20년전 이 영화에 등장한 장면들이 지금 현실화 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요즘들어 크리스마스, 어린이날과 같이 아이들이 선물을 기대하던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장난감들은 품귀현상을 겪는다.구하기 힘든 장난감을 구하기 위해 어둑어둑한 새벽부터 아버지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마트 앞에 줄을 선다. 다행히(?) 마트에선 번호표를 나눠주기 때문에 영화에서 처럼 전력질주를 하거나 터치다운 하듯 다이빙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재고가 떨어지면 구할 수가 없다. 그러면 결국엔 중고매물까지 인터넷 검색으로 찾게 되는데, 귀하신(?) 장난감들은 중고인데도 불구하고 새제품 정가의 3~4배 웃돈을 줘야만 구할 수 있을 정도이다.



3. 아빠 마음

아이들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부모가 어디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적어도 내가 아빠가 되기 전까지는...

그런데 내가 아들을 둔 아빠가 되고 나니, 나도 다른 아빠들 처럼 장난감 코너를 서성거리는 날이 많아졌다. 지금은 그래도 좀 자제하고 있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매일 퇴근 길에 마트 장난감 코너를 들르는 일이 코스처럼 되었었다. 사실 아이가 이제 겨우 4살이다보니, 뭔가를 정확하게 사달라고 요구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아이가 친구들, 형아들과 놀면서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부러운듯 쳐다볼때면 아빠로서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러한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야 좋지만 기왕이면 책이나 옷같은 실용적이고 도움이 될만한 것을 사주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치만 그런 아내에게 장난감을 받았을 때 비치는 아이의 환한 웃음과 감탄은 나에게 동기부여로써 이미 충분하다고 항변했다. 아내도 쉽게 굽히지는 않았다. 장난감이 주는 아이의 즐거움은 채 30분을 가지 못한다는 것. 새로운 장난감을 받아들어도 그 때 뿐이지, 20분정도만 지나도 금방 실증 내버리고마는 것이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다. 정확하게 맞다. 하지만 아빠인 나는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 하는 그 20분을 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사는 것이다.


그치만 그렇다고 아내 말을 어길 수도 없는 노릇. 아내가 "장난감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냥 마트에 가서 구경만 해야겠다. 아들 이레를 데리고서 마트에 가도 구경만 하는 걸로... 다행인건 이레도 딱히 사달라고 조르거나 하는 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 필요한 것,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 보다도 그저 이 녀석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은 아빠의 욕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

사람인 아버지도 자녀가 행복해하는 모습 보기를 이처럼 즐거워하는데, 하나님도 그러하시지 않을까.

내가 기도하고 요구하는 것들이 정말 진정한 나의 행복과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세속적인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진정 내가 행복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굳이 기도하지 않아도 나에게 충분히 넘치도록 주실 것이 아버지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아들, 딸에게 그러한 것 처럼, 하나님도 언제나 나보다 한 발 앞서 나의 갈 길을 예비하시고, 나의 행복을 바라고 계실 것이다. 


나는 성장하며, 성숙하며 지나치게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가 문득 들었다.

이것은 나를 더욱 가식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교만한 지식을 갖게 하였으며, 회의적인 성품의 어른이 되게 하였다.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말들로 분명하게 정의하려 하고, 행복을 얻기위해 쌓아야 하는 금자탑은 무엇일까, 필요한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고민들 자체야말로 행복과 멀어지도록 하는 머리 아픈 일인데도 말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17)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와 같은 심령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복잡한 생각과 머릿속 계산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레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할 때 

'아빠가 과연 이걸 하실 수 있을까?'

'아빠의 재정상황에 여유가 있을까?'

'아빠가 혹시 피곤하거나 바쁘시진 않을까?'

이런 고민과 계산을 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성숙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레는 아빠가 반드시 나의 요청을 들어줄 것이다. 아빠는 할 수 있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과연 하나님은?' 이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따져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 하심을 의심하지 말자. 그저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의지하는 믿음으로 기도할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5. 아빠는 터보맨

다시 영화 "솔드아웃"을 보자.

백화점에서도 허탕치고,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허탕치고 온갖 수모를 겪던 아빠(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급기야 이웃집에 놓여있던 '터보맨' 장난감에까지 손을 대고야 만다. 하지만 결국 들통나버리고 아내로부터 경멸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치만 아내의 경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실망한 아들의 얼굴이었다. 순간 아들의 마음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터보맨 퍼레이드에 가게 되는데, 우여곡절 끝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터보맨으로 분장을 하게 되고, 아들에게 잊지못할 추억을 선물로 안겨주게 된다.


아들은 터보맨 장난감 보다도 아빠가 바로 그 터보맨 이라는 사실에 행복한 미소를 보낸다. 하루 종일 실패와 좌절을 겪은 아빠였지만 아들의 그 미소 한방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현실도 그러하다. 하루하루 직장과 사회에서 치이다 보면 힘들고 마음이 상할 때가 많지만, 퇴근 후 집에가면 뛰어와 안기는 아들이 있고, 눈만 마주쳐도 생글생글 웃어주는 딸래미가 있다. 이 녀석들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어려워도 꾹 참고 갈 때가 있다. 아마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러하시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아들 이레에게 안기는 장난감은 어쩌면 실제로는 나 스스로에게 안기려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야 말로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에요! 터보맨이 우리 아빠였어! 아빠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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