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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Apr 07. 2017

예의바른 완고함

Chef of Antoine's Restaurant

1. 아버지와 대화하기

나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과 의견대립이 있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의외로 환경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관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지만,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게 되거나, 피해를 주는 일로 인한 갈등은 나로하여금 죽을만큼 괴로운 상황으로 이끌고 간다. 특히, 아버지와의 대화는 나에게 희망을 줄 때도 있지만, 나를 낙심하게 하는 때도 많다. 나의 아버지는 지혜롭고 꼼꼼하신 분이시다. 이러한 아버지의 연륜과 경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그 고지식함에 가로막혀 마음을 어렵게 만들때가 있다.


아버지와 대화하다보면 결국 "네, 알겠습니다." 하고 단념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두고 말씀드릴 때는 다소 죄송스럽더라도 완고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완고함으로 인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지혜가 필요하다. '예의바른 완고함'이 필요한 것이다. 


2. Chef's stubbornness : 쉐프의 완고함

올해로 177주년을 맞이하는 전통의 레스토랑이 있다. 미국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 위치한 Antoine’s Restaurant (*located : French Quarter, New Orleans, Louisiana) 은 1840년 설립되어, 미국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긴 전통을 지켜왔다. 나폴레옹이 1803년 미국 정부에 뉴올리언스를 포함한 루이지애나주 전체를 USD1,500 달러를 받고 매각하기 전까지 뉴올리언스는 프랑스의 식민지로서 그들의 문화와 영향을 받아왔다. 지금은 미국 땅이지만, 여전히 프랑스풍 건물과 음식이 그들의 문화를 간직해오고 있다. Antoine’s Restaurant 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전통있는 French Restaurant로서의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오랜시간 'High-end restaurant'로서 전통을 지켜온 만큼, 이 레스토랑에는 차별적인 세 가지 특징이 있다.

  1.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다녀갔다.
  2. 대를 이어 이 식당의 웨이터직을 맡고있는 가문이 있다.
  3. 쉐프의 완고함이 있다.

이 식당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자취들이다. 특히 세 번째 특징인 '쉐프의 완고함'은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변함 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그 증거를 메뉴판에서 찾을 수 있다.

" Centennial Menu of Antoine's Restaurant, New Orleans (1840-1940) : 100주년 기념 메뉴판"


Restaurant의 10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제작한 메뉴판의 한 페이지이다. 100주년을 맞이한 해가 무려 1940년인 것을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상단에 적힌 'AVIS AU PUBLIC '(불어로 "공지"라는 뜻)인데, 공지사항의 내용이 흥미롭다.


Faire de la bonne cuisine demande un certain temps. Si on vous fait attendre,

c'est pour mieux vous servir, et vous plaire.


"좋은 요리는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려주시면, 더 좋은 요리를 제공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식당을 찾는 고객이라면 누구든지 주문한 요리를 빨리 맛보고 싶어하겠지만, Antoine's restaurant의 쉐프는 고객들에게 느긋하게 기다려달라는 뜻을 정중하게 전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식당을 찾아온 성미급한 고객이 요리를 기다리기 싫어 웨이터를 불러 보채도, 같은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굉장히 정중하게 부탁하며 이야기하기 때문에, 거절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기분을 결코 상하게 하지 않는다.


3. 나는 무엇을 잘못했나?

내가 아버지와 대화할 때 혹은 주변 사람과 대화할 때, 그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요구를 거절함에 있어서 나에게도 Antoine's restaurant의 쉐프가 그러했던 것처럼 완곡하게 말하고 있는지, 예의바르게 거절의사를 밝히고 있는지 돌아봤다. 아쉽게도 그동안 나는 그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기는 커녕 조소를 일삼았고, 완곡하기보다는 모나게 대답했다. 언제나 거칠었고, 몸짓과 표정을 모두 사용해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의 논리보다도 못난 태도 때문에 상대는 나를 질타했고, 또한 마음 상했을 것이다.


정말 의아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얼굴을 붉히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걸 참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가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을 때는 다시 한번 그를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힐난했던 지난 나의 모습들이 진심으로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내게 참으로 지혜가 부족했던 것 같다. 내가 한 두차례 그렇게 상대를 대하다 보면 상대는 나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나의 불성실한 태도에 대한 선입관으로 나를 대할지도 모른다. 


나의 부단한 노력으로 모난 부분들을 매끄럽게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붙잡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표면적인 겉치레는 안하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지만, 대화에서 꼭 진심이 아닐지라도 상대로 하여금 '나 지금 잘 듣고 있어요, 당신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라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빨리 달라고 요구하는 진상 고객에게 Waiter가 속마음으로는 '뭐 이렇게 참을성이 없나.' 라고 생각할지라도 표면적으로는 완곡하고 예의바르게 기다려주십사 이야기해야 고객의 마음도 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나 스스로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동료, 친구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예의바른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지혜롭게 말하는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정면으로 충돌하는 발언을 할지라도 그로 하여금 

'그래, 네가 하는 말이라면 한번 믿어보겠다.'

'네가 정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니, 나도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겠다.'

라며 변함없는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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