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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Mar 30. 2017

결혼 전에는 안그랬는데, 변했어!

과연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1. 내가 변했다고?

가끔 아내와 의견 충돌이 있거나, 뭔가 나의 생활방식이 자신의 기대치에서 벗어날 때면 아내는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을 던진다.


결혼 전에는 정말 이럴 줄 몰랐는데, 어떻게 이래? 사람이 변했어.


말투에서 이미 실망감이 느껴진다.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도 아니건만, 작고 사소한 문제 조차도 아내는 내게 서운한가보다.

그만큼 나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다는 반증이겠지만, 사실 정말 작은 문제들이다.


 - 결혼 전에는 깔끔하고 청소도 잘 하는 사람인 줄 알았으나, 영 아니다.

 - 옷장 정리도 잘하는 줄 알았는데, 도무지 자기 손으로는 하질 않고 입으로만 한다.

 - 쉽게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아니다 화를 잘 낸다.

 - 요리도 잘하는 줄 알았는데, 먹기만 좋아한다. 설겆이도 잘 안한다.

 - 방귀를 이렇게 많이... 휴...

 - 자상해서 집안일도 알아서 잘 할 줄 알았는데 손도 대지 않는다.

 - 연애할 땐 손 수 만들어서 선물해주는 자상함이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안해준다.


대충만 찔러봐도 이러한 실망 포인트가 줄줄이 나온다.

심지어 아내의 친구들 혹은 아는 언니들이 '맞아. 남자들 원래 다 그래, 결혼 전에는 안그랬는데, 결혼하면 완전 딴사람 된다' 며 한마디씩 거들때면 내가 마치 죄인이 된 기분까지 든다.

그치만 내게도 할 말은 있다.

  "내가 변한게 아니야, 단지 그땐 몰랐을 뿐이지!"



2. 정국혼란

우리 부부사이 말고도 온 국민이 본의 아닌 배신감을 맛보고 있다.

'정말 그가 그럴 줄 몰랐다', '실망이다' 라는 것.

도대체 누굴두고 하는 말일까?는 요즘 이 나라의 핫이슈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오늘의 키워드라고 한다면 단연 대통령, 탄핵과 같은 주요 정치적 현안이지 않을까.


'법을 어긴 자.'

'법을 어기도록 종용한 자.'

'법을 어길 수 있도록 조력한 자.'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고개숙인 채, 많은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 선 모습들을 연일 방송과 여러 매체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국정농단'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제각각 역할을 해내었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지은 죄의 멍에를 지고 그 앞에 섰으리라. 하지만 개개인의 표정과 태도는 분명 상이했다.


'잘못했노라며 뉘우치는 자.'

'나는 아니라고 부인하는 자.'

'여전히 이러한 상황들을 우습게 여기는 자.'


도대체 이들의 태도와 방향은 어디에서부터 엇갈리는 것인가.

그들의 배경에는 각각 대한민국 최고위급 공직자부터 일개 사업가, 혹은 일개 재단 직원까지 다양했다.

배경에 따라 그들의 태도는 크게 엇갈렸다.



3.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Office changes manners.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은 사람이 출세 혹은 그럴만한 자리에 가게 되면 거기에 맞는 매너와 덕을 갖춘 사람이 되어 간다는 좋은 의미지만, 요즘은 부정적으로도 많이 쓰이는 것을 듣게된다. 이번 사건에 주요 인물로 떠오른 한 공직자의 과거 고교시절 은사님이 방송에 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예전에, 고등학생때는 이렇지 않고 바르고 착한 아이였는데... 

    정의롭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겠노라 다짐했던 아이었는데... 

    결국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니 다른 이들과 다를바 없이 변질되었네요..."


라며 안타까움에 떨리던 목소리가 기억난다.


불과 몇해전,

모두에게 존경받던 뛰어난 의학 박사이자 공학자였던 이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우려'와 '응원'을 함께 보냈다. 심지어 그가 대권에 도전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극에 달했다.

'그라면 왠지 할 수 있을 듯 보인다.' 라며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하지만 프로인 기성 정치인들 사이에서 새내기 정치인이 가야할 길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 역시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겐 적지않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도 역시 변질되었다.'

'정치에 물들었다.'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안타까워하는 시선을 보냈다. 사실 이전에도 수많은 방송인과 체육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큰 인기와 신뢰를 얻고 성공하여 그것을 거름삼아 큰 포부를 안고 정치로의 진출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사람들로부터 "그럼 그렇지.. 그도 역시 정치에 물들고야 말았다." 라는 뭇매를 맞기 일쑤였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

결국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도, 그 누구라도, "그 자리"에만 가면 "그렇게" 변하는 것.

이것이 진정 사실일까?



4.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원래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마법처럼 특정한 자리에만 가면 변질 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시편 118장 8,9절-

성경에서는 사람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그것은 기대를 무너뜨리며 실망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사람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완전할 수 없고, 불완전한 인간이 죄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다. 


결코 흔들림 없어 보일만큼 건실해 보이는 사람도 그의 마음 속 약한 부분을 흔들어 놓는다면 무너질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길 '모든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고 명령하고 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요즘 말로 흔히 '멘탈붕괴'와 같다. 대부분 사람들이 '멘탈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지만, 아무리 멘탈을 강화한다한들 과연 '욥의 고난' 앞에서도 지킬 수 있는 멘탈이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고, 또 언제든지 잘못할 수 있다는 것. 마음을 지키는 것은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를 닦는다고 하여, 득도를 한다고 하여 혹은 어떠한 경지에 오른다고 하여 우리가 모든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 스스로를 너무 신뢰해서도 안되고, 남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더더욱 안된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오직 변함없는 하나님을 바라볼 것.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리는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을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 가까워지고, 알고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그를 더이상 믿음의 대상이 아닌 사랑해야할 대상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그도, 그에게도,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구나. 그도 화를 낼 줄 아는구나. 그도 밥을 먹을 때 흘리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드러나보이지 않는다.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아도 드러나지 않는다. 

반대로 대중의 평가를 받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저 가만히 걷기만 해도 "잘한다", "못한다"의 양면적 평가를 받게된다. 어떻게 보면 억울할만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사람들이 하는 말 속, 사소해 보이는 단어 하나의 선택에도 대중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미국 대통령 연설문 속 특정 단어가 몇 번 등장하는 가는 단연 뉴스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낮은 위치에 있을 때는 드러나보이지 않던 실수와 자잘한 잘못들이 높은 자리에서는 거슬릴정도로 드러나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원래 그렇지 않았던 올바른 사람이 악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의 원래 모습이며 그 동안 본 모습을 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 이제야 모난 부분들이 대중앞에 드러났을 뿐이다.



5. 그래, 우리는 드러날 뿐이다.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무의식 중에 집에와서 옷을 갈아입다보면 입었던 옷을 자꾸만 의자에 걸게된다.

그리고 양말도 세탁기에 넣어야 되는 걸 알지만 자꾸만 방구석에 가지런히 놓게 된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정리를 안하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행동한다.


그럴때면, 아내는 제발 세탁기에 좀 넣으라고 이야기하며 한마디 한다.


"결혼 전에는 여보가 진짜 깔끔하고 정리잘하는 사람인줄만 알았는데... 휴..."


아내의 한숨 소리에 뜨끔한다.

내가 스스로 '정리정돈 잘하는 사람'처럼 포장한 적은 없었지만, 왠지 아내는 나를 그렇게 생각했었나보다.

하지만 나는 결혼전에도 이런 잔소리를 들어왔다.

내가 결혼하고 변한 것은 아니다. 나는 원래 그런사람이었을 뿐. 하지만 남자친구일땐 드러날 수 없었던 단점들이 이제 남편이 되고보니 아내의 눈에 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아내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 속에도 존재하며, 단점만이 아니라 장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각자의 생활방식대로 수십년을 살아 온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함께 살기로 작정했을 때,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아마도 그 두사람은 부딪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화장실 불을 자꾸만 켜놓은 채 돌아다니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부지불식간에 양말을 방구석에 벗어놓지만,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말로 지적한다고 해도 쉽게 고쳐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온 생활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잔소리하기 위하여 결혼한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그런 헛점과 빈틈을 내가 메워주면 될 일이다. 배우자를 흔히 '나의 반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완벽한 퍼즐조각이 되려면 상대방의 모난 부분을 나의 부족한 부분에 채워 넣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이러한 '변화' 아닌 '발견'에 대하여 실망보다는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여기고 그를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장점에 대해선 칭찬하고, 몰랐던 흠에 대해서는 도움과 고언(苦言)으로서 대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실수와 잘못으로 실망감과 상처를 주는 아픔은 더이상 없으리라. 설령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성장통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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