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주영 May 18. 2017

아버지의 등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어버렸던 아버지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 "아버지의 등" 하청호 -


지난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 교회 목사님께서는 "아버지,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셨다. 설교에 앞서 성도들에게 하청호 시인의 "아버지의 등" 이라는 시를 읊어주셨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아니, 인상적이었다기 보다는 이 시 한 편으로 이미 내 마음 깊은 곳의 뭉클함이 살아나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 보여주신 영상 한 편이 끝났을 땐 많은 성도들이 눈물을 훔쳤다. 나도 그러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1. 어머니의 편지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종종 편지를 써주시곤 했다. 한 지붕 아래에 있으면서도 당신이 직접 말로 전하기 어려운 이야기는 늘 편지를 써 나의 도시락 통 안에, 혹은 나의 책상 위에 올려두셨다. 그러면 홀로 오해하고 비뚤어졌던 내 마음은 스스로의 제자리로, 안정을 찾았다. 그 많은 편지들을 다 보관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그것들이 소중한 것인 줄 몰랐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편지가 두 장 있다.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깐 국민학교 2학년 되었을 즈음의 일이다. 나는 지금 나의 아들이 그러한 것처럼,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스티커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언제나 콩나물, 담배 심부름을 하고 나면 어머니가 돌려주신 거스름 돈을 모으고 모아 동네 문방구로 달려가 좁은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스티커를 골랐다. 그런데 별 것 아닌 그 스티커에도 점점 욕심이 생겼다. 고르고 골라서 집에 가져오면 남겨놓은 스티커가 계속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문득 안방 서랍장 위에 올려놓은 어머니 지갑이 눈에 들어왔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야 말았다.


그 날 저녁을 먹기 전, 내가 어머니 지갑에 손 댄 사실을 모르실 거라 생각했던 나는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종아리가 터지도록 회초리를 맞았다. 어머니 눈이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땅만 봤다. 2시간이 넘게 꿇어 앉아 훈계를 듣던 나는 그렇게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내 머리 맡에는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다. 노트의 한 장을 찢어 사방을 핑킹가위로 잘라 만든 수수한 편지지엔 어머니의 빼곡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곤 또 다시 눈물을 쏟아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어린 나를 심하게 야단 친 것과 회초리를 드신 것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눈물을 떨어뜨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솟는 눈물을 삼키느라 이를 악 물고 계셨다고 한다. 아무튼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편지 한 장을 쓰시곤 내 방으로 들어오셨는데, 잠 든 내 종아리가 퉁퉁 부어있는 걸 보시고 결국 우셨다고 했다. 그리고 바세린을 꺼내 내 종아리에 발라주셨다. 이 날 남겨주신 어머니의 편지는 지금 두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너무나 고마운 지침서가 되었다. 


2. 나를 크게 했던 어머니의 두번째 편지

내가 간직한 또 다른 편지는 내가 공군에 입대하였을 때, 나에게 보내주신 어머니의 첫번째 편지이다. 진주의 기본군사 훈련소에서 받아 보았던 어머니의 편지는 첫 문장을 채 읽지 못하고 도로 품에 넣어야 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흔히 말하지만 정말 그랬다. 주책맞은 눈물이 흘러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훈련을 마치고, 다시 꺼내 든 편지 속에서 가족들의 안부를 알 수가 있었다. 하루 전 날이 아버지의 생신이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행여나 훈련소에서 아버지 생신이라고 전화라도 시켜줄까 싶어 온 식구가 집 밖으로 나가질 못하고,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생신에 전화 한 통화 걸지 못한 내 처지가 원망스럽고 밉기만 했다.


그리곤 편지엔 온통 내 걱정뿐이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당신의 아들이 새벽공기에 행여 춥지는 않은지,

배고픈 걸 잘 참지 못하는 이 녀석이 끼니는 잘 챙겼는지,

6시면 밥을 먹었을까,

10시면 잠자리에 누웠을까

매 시간 당신의 아들 걱정에 편히 지내지 못했던 나날들이 그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군대에서는 유독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과 효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 유격훈련 중에는 교관이 먼 쪽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쪽이 너희들 부모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향하여 '어머니, 사랑합니다!' 라고 외친다. 실시!"

라고 했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목이 메여 소리를 삼켜야 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내가 입대하던 날 훈련소에 함께 오지 못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동생의 등교를 챙겨야 하셨고 나는 충분히 이해하였지만, 그 날 따라와 배웅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잘 성장하라는 응원의 말씀도 잊지 않고 담아주셨다. 내가 첫 휴가를 받아 나가기 전까지 읽고 또 읽으며 힘들었던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게 버텨준 고마운 편지였다.


3. 아버지의 등

나의 어머니는 이렇게 내 성장의 과정 가운데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멘토로서의 역할을 많이 해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 달랐다. 아버지는 많은 일들을 척척해내시는 분이어서 실질적으로 도움도 되고 언제나 살가운 장난도 많이 쳐주셨지만, 그래도 왠지모를 거리가 느껴졌다.


함께 걸을 땐, 걸음이 빠른 아버지께서 항상 앞서 걸으셨다. 잠시 방심하면 시야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에 자주 갔었지만, 그 때에도 아버지는 항상 앞서가셨다. 조금 힘들어서 헥헥 거리고 있으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셨다. 중간에 기다려주시거나 다시 내려오시는 일은 없었다. 정상에 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나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다닌 기억이 많다. 정면보다는 뒷모습이 익숙했다. 몇 백미터 밖에서 걸음걸이만 봐도 아버지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앞서 걸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익숙하다.


언제나 체력좋고 철인[鐵人] 같았던 아버지. 하지만 그도 점점 나이가 들어감을 직감했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방학동안 내 키가 부쩍 커버려서 교복도 새로 맞춰야 했던 날이 있었다. 그동안 올려다 보던 아버지와도 이젠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성장고를 겪던 중학교 시절의 어느 여름 날, 아버지와 함께 여느 때 처럼 산에 오르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산은 설악산이었다. 내가 어려 아직 걸음마를 하지 못할 때에 아버지는 나를 업고 '금강굴[金剛窟]'까지 가신 적이 있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이 날도 우리는 금강굴을 목표로 산행을 시작했다. 동생과 어머니는 절반에 못 미쳤을 때, 힘들어서 도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나와 아버지는 계속해서 산을 올랐는데 이날도 역시 아버지는 한번도 선두를 내어주시지 않았다. 그치만 이상하게도 이 날은 아버지와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금강굴에 가까워 오자 철제로 만든 계단과 난간이 나왔다. 길이 좁아 내려오는 사람들을 피해 잠시 옆에 섰을 때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등이 아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땀으로 덥혀 있었다. 아버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그의 턱 선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아버지는 몸시 지친 듯한 표정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계셨다.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잠시 뒤,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셨는지 이내 의연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으셨다.

"힘드냐?"

"네."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 이정도 가지고..."

아버지는 힘들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도 이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버지는 점점 약해져가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티를 내려고 하셨지만 흐르는 땀이 얼굴을 씻겨내자 숨길 수 없는 세월의 흔적들이 드러나보였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 그것들을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아들 앞에선 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남겨드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4.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

그 후로 나의 마음에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모습을 감추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약한 부분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강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이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하시는 지는 몰랐다. 그냥 당신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최소한 그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와 아내는 '늑대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늑대인간이 나오는 판타지 장르였는데, 미혼이었던 두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 기르기까지의 과정이 묘사되어 있었다. 아이가 밤새 울며 보채는데 원인을 몰라 발을 동동구르는 모습이 나오는데, 아내와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도 저러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했던 게 생각이 난다. 그 뒤로 우리는 서점에서 육아에 대한 서적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읽고 암기하려고 애썼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의지할 곳이라곤 우리 둘 뿐인데, 우리가 아이에 대해 무지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아이(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Wolf Children, 2012)"]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처럼 부모의 헌신과 애씀이 있어야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지나가며 마주하는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내 마음이 겸손해지기까지 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아이에게 무엇이든지 하나 둘 씩 가르쳐주었다. 아이에겐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추운 겨울 하늘에서 떨어지던 하얀 첫 눈도 정말 이 아이에겐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는 눈이었고, 시원하게 쏟아지던 비도, 번개도, 꽃도, 나비도 모든 것이 아이에겐 새롭고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일도 옆에서 자세하나하나 가르쳐 주며 이렇게 해야하는 거야 하고 알려줘야 했다. 이런 부분은 여자인 아내가 알려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점점 아이는 아빠와 엄마를 신뢰하게 되었다. 나의 말이라면 찰떡같이 믿었다. 장난감을 사주겠노라 하면 떼쓰던 일도 금세 멈추고, 고분고분 해졌다. 나를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빠로서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 부족한 면들을 채워주고 싶었다.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이 아이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내가 지키지 못한 약속들, 내가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실패 때문에 아이가 아빠를 더이상 신뢰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다보니 나의 약한 부분들, 좌절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감추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되려, 언제나 성공하는 아빠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 자칫 왜곡된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들 이레에게 각인될까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5.실패하는 연습

얼마 전, TV에서 북유럽의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각설탕으로 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초등학생정도 되어보이는 아이들이었는데 쉽게 부서지는 각설탕 때문에 높게 쌓기가 매우 어려워보였다. 좋은 블럭도 많은데 왜 아깝게 먹을 걸로 저런 걸 하나 싶어서 지켜보았는데, 여기엔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얼핏봤을 땐 공간지각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실패하기 연습"에 관한 수업이라는 것이다. 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도 집에서 보면 뭔가 자신만의 계획을 가지고 블럭을 쌓기도 하고 종이를 접거나 점토를 만지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원하지 않던 붕괴를 경험하기도 하고,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실패했을 때, 바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함께 고민하는 역할을 옆에서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실패와 실수는 내가 목표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SBS스페셜 다큐멘터리 "나의 빛나는 흑역사" 中]


사실 어떤 모습이 아버지로서 정답인지 모르겠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완벽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한지, 인간미 넘치는 아버지가 필요한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인 나도 실패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다. 아이가 어릴 때는 넘어져도 보고 물을 엎질러도 '괜찮아, 그럴수도 있어.'라고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가 저지르는 실수와 실패에 대하여 관대해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실수와 실패를 감추고 완벽한 모습만으로 아이에게 다가가려는 일종의 강박관념같은게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결국 실수하고 실패한다. 그리고 딛고 일어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 쉽게 용인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눈물'이다. 어릴적 그토록 눈물이 많아 주책맞게 잘 흘렸던 내가 이상하게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보니 눈물샘이 말라버린듯 잘 나오지 않는다. 감격과 감동의 순간들이 분명 있었고, 슬픔에 잠겼던 때도 있었지만 아이 앞에서 만큼은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치만 나온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흘려보내진 않을 듯 하다. '하청호' 시인의 시 처럼 아버지로서 등으로 우는 속울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조금 서글픈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눈물마저 가족들 앞에선 전략적으로 생각해 흘릴지말지를 결정해야 하다니, 아니 어쩌면 그냥 참아야 하는지도... 언제까지나 '내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갈 줄만 알았는데, 이런 내가 이젠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묵상과 잡념들도 그냥 흘려보낸 나는 오늘 저녁에도 아이들과 마주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무런 고민 없는 것처럼, 그리고 아무 힘든 것 없는 것처럼 아이와 로보트를 가지고 놀고, 숟가락을 부딪히며 놀아야지. 없는 것처럼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 만큼은 정말 잊게 되는 것 같다. 살아가며, 성장하며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아버지로서의 면모가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데 집중해야겠다. 그게 지금 나의 행복이고, 지금 내가 내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아버지로서의 몫이다.


6.나를 꽃 피우기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신 아버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한 설교에서 목사님은 성경에 등장한 한 아버지의 모습을 이야기해주셨다. 그는 막내 아들이 죽었다고 믿었고, 그렇게 아픔을 가슴에 묻은채 수년을 살아오다가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과 재회하게 되었다. 그는 아들에게 지금 네가 살아있고 너를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에게 있어서 아들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바로 이와같은 아버지의 사랑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의 주제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감히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경에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복음이라고 하는 이 십자가에 집중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사랑은 여기에서 드러나게 된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의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 곳 저 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 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 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띈 젊은 아가씨의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 피우기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 꽃 피우길

- 김진호 '가족사진' -


세상 모든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은 이와 같을 것이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자신을 던지실 고귀한 희생이 이미 모든 부모님들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 나도 내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하겠지만, 반대로 나 역시 나의 부모님의 희생으로 지금 여기까지 살아왔다. 세상 누구라도 그렇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이도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기 위해 열달을 뱃속에 품고 수고하셨으며, 그가 글을 배우고 걷기까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수고는 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방법과 모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을 감히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의 고귀함은 그 사람 자체로도 충분하지만 그 부모님의 수고와 세월 또한 그 안에 포함되어있다. 사람이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더욱더 모든 사람 앞에 겸손하고, 모든 부모님들의 수고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의바른 완고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