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위로, 나를 위한 전투적인 한 끼

우리할매 설렁탕&함흥냉면 (서울 광진구 자양로 15길 72)

by 갈미송
IMG_8487.HEIC 우리할매 설렁탕&함흥냉면 (서울 광진구 자양로 15길 72)

일본의 TV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아저씨처럼 열심히 움직인 날에는 나를 위한 맛있는 한 끼를 전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여름의 초입에 어두운 색의 재킷을 입고 면접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합격 결과에 서둘러 서류를 준비하고 뒤늦게 점심을 먹으려 하니 오후 3시다. 나를 위한 확실한 보장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더운 날씨를 가시게 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가 떠올랐다! 나의 최애 음식점인 우리할매 설렁탕&함흥냉면이다. 이 가게는 처음 생길 때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게 앞 큰 솥으로 펄펄 끓이는 설렁탕의 뽀얀 냄새는 길가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배고프게 하는 맛있는 선물이었다. 나는 여러모로 이 가게가 마음에 들었다. 크게 구성과 구조, 인테리어, 그리고 중요한 음식 맛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먼저 독특한 메뉴 구성이다. 설렁탕과 냉면 그리고 돈가스라니. 가게에 들어가면 매운 등갈비 찜도 함께 판매한다. 의외라고 생각하지만 사장님의 똑똑한 전략이 보이는 알찬 구성이다. 더운 여름을 겨냥한 함흥냉면, 그리고 추운 겨울날을 데워줄 설렁탕,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돈가스와 갈비찜.


놀라운 것은 모두 하나같이 맛이 일품이다. 설렁탕의 깊은 맛도 물론이지만, 사실 이 집은 돈가스가 맛집이다. 직접 다지고 소스까지 만들어져 나오는 돈가스는 여느 돈가스 전문집과 비견해도 독특한 특색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다. 케첩을 기반으로 따로 야채나 건더기를 첨가하지 않은 달큼하고 농도가 적당한 소스, 얼마나 두들겼는지 한입 베어 물면 질긴 부위 하나 없이 그대로 툭 잘리는 두툼한 고기. 이미 소스에 절여 나오는 경양식 형태의 돈가스지만 바삭함을 잃지 않는다.


거기에 환상적인 건 이 집 만의 김치이다. 직접 만든 깍두기와 생김치를 아낌없이 주시는데 한입 베어 물자마자 나는 ‘이건 전라도의 맛이다’하고 느꼈다. 김치가 귀한 자취생에게 그것도 고향김치는 진짜 간판 그대로 우리 할머니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사장님에게 주접을 떤다. ‘김치가 너무 맛있어요! 고향 김치 맛이에요!’ 사장님은 화색을 띤다. ‘어디서 왔는디? 나는 김제 출신이여!’ 역시나 같은 동향 사람은 알아보게 되는 법. 나의 주접거림에 사장님은 반가운 듯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즐거운 이야기 뒤 남긴 김치가 못내 아쉬워 작은 봉투에 싸달라고 한다. (매번 싸달라면서 다음엔 꼭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챙겨야지 생각하지만 까먹는다. 반성한다.)


이렇게 친근하신 사장님을 비롯해 같이 일하시는 직원분 그리고 기갈나게 홀을 봐주시는 안주인 사모님의 조합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하다. 사모님은 살갑고 과도하게 친절한 스타일이기보다 조용히 묵묵히 그리고 센스 있게 일을 하신다. 돈가스를 시키면 메뉴가 나오기 전 항상 냅킨을 한 장 뽑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칼과 포크를 놓아주신다. 김치는 항상 인수에 맞게 넉넉하게 주시며 허둥되거나 까먹는 법이 없으시다. 아무래도 젊은 나에게는 그렇게 말을 걸진 않으시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남다른 친화력을 보이신다.


앞의 할머니 셋은 설렁탕집에서 모이기로 했나 보다. 할머니 둘 먼저 와서 냉면을 시키고 “할머니 하나 더 와” 이야기한다. 5분쯤 지나자 할머니 한 분이 등장하고 사모님은 “할머니 아니고 아줌마구만 왜 할머니래~” 하고 너스레를 떠신다. (사실 누가 봐도 할머니지만) 사모님의 농담에 나도 모르게 혼자 웃어버린다.


북적거리는 시장 초입에 위치한 가게답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재밌는 점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쉼터처럼 가게에 온다는 것이다. 왜냐면 내 대각선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음식이 없는 테이블에서 잠시 쉬고 있으니까. 할머니는 금방 자리를 뜨시고 할아버지는 한 참을 창밖을 보고 앉아계신다. 가게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쫓아내지 않는다. 마침 점심을 먹으려는 가게 사람들은 공깃밥을 하나 더 꺼내 할아버지에게 같이 먹자고 제안한다. 할아버지는 한사코 거절을 하시고 주방장 두 분이서 권하시는 소주 한잔도 마다하시고 하염없이 창밖만 보신다.


나는 이런 순간이 올 때면 마음이 뭉글해지는 기쁨을 느낀다. ‘자양동 좋아!’에 냉면에 올린 돈가스 한입, ‘너무 맛있어!’에 또 한입, ‘진짜 행복해!’에 마지막 한입을 마친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도 출입구와 주방의 뒷문이 직선상에 놓이며 앞뒤가 시원하게 트여 바람이 솔솔 부는 이곳의 공기도, 사람 냄새 풍기며 이야기를 나누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행복을 가득 채웠다. 누구보다 오늘의 고된 하루를 위로하고 축하받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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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집이지만 돈가스가 맛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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