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나는 나를 제일 좋아하고 싶다.
슬픈 사실이지만, 나는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이토록 적의가 가득한 사람은 나밖에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인정한다.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말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가장 가까이 그리고 오랫동안 지내며 느낀 결론은 그렇다.
부모를 포함하여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아니, 했는데 내가 귀담아듣지 않았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면 대부분은 "너는 너무 자존감이 부족해" 또는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하는 것들이었다.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따뜻한 말이라 그 순간에는 스스로를 아끼며 살아보리라 다짐을 한다. 하지만, 이젠 오랜 습관 같은 자기 비하와 혐오는 슬금슬금 다시 머릿속을 채운다.
정말 습관적으로 하다 보니 모든 것을 혐오로 연결시킬 수 재능이 생겼다. 예를 들면 '이마가 너무 넓고 이상해서 외계인 같은데' 하는 생각을 시작하면 갑자기 이마 축소술 또는 모발 이식 따위의 영상을 찾아본다. 이런 건 얼마나 할까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어마무시한 비용에 놀라서 돈이 없는 자신에 대해 자책을 한번 해주고, '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걸까'라는 생각을 이어한다. 그리곤 '나는 언제까지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할까', '아무래도 정말 이번 생은 망한 게 아닐까'하는 비합리적인 사고가 거의 자동반사처럼 나온다. 이런 사고는 얼굴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발견할 때도, 일을 못할 때도, 돈을 무지 많이 쓸 때도, 쪼잔한 마음이 들어 분에 못 이길 때도 똑같다.
뭐 어쨌든 자기 비하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나랑 잘 지내고 싶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건 여전한데 나이를 먹으니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잘 나아지지가 않는다. 실제로는 근육하나 없는 뱃살만 나온 몸이지만, 마음에 근육을 키워볼까 싶다. 인바디에 오르는 처참한 기분으로 민낯을 쓴다. 그리고 오늘의 운동을 하듯 자기 위로를 한다.
오늘의 위로는 남자친구와의 통화였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의 바닥을 낱낱이 고해성사하며 찔찔거렸다. 그리고 확인이라도 받고 싶은 듯 나 진짜 쪼잔하고 바닥 같은 사람이니까 지금이라도 도망가는 게 좋을 거라고 또 희대의 찐따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는 "저점매수? 오히려 좋아"와 같은 반응이었다. 이걸 듣고 웃겼는데 나도 지기 싫어서 "지금 저점이라 생각하지? 지하 100층은 더 남았는데"라고 받아쳤다. 별거 아닌 대화인데 땅끝까지 파고들었던 기분은 조금은 지상을 되찾았다.
어디 하나 잘난 것 없는 마이너스의 삶이지만 저평가된 우량주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고 찌질해도 할 말을 하는 스스로에게 기특함을 보낸다.
솔직히 자기 위로라는 것도 영 낯설고 작심삼일로 끝났던 수많은 선례가 있기에 또 이러다 하고 말겠지 싶지만 그래도 힘닿는 데까지는 매일 써볼까 싶다. 나의 찌질함에 대한 고해성사이자 용서를 받는 글들일 것이다.좋아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