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새벽의 소심한 침입자

서울 광진구 자양동 410-1

by 갈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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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또 영화 한 편을 보고 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문득 잠에서 깨니 오전 4시 30분이다.

한 시간 정도 휴대폰으로 놀다가 동이 트길래 일출이나 볼까 싶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왔다.


역시나 이 시간대에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산책하고 조깅하고 운동을 한다.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슬리퍼를 신고 얇은 책을 챙겼다.


한강변 계단 한 구석에 앉아 책을 읽으려 했는데 눈앞에 비둘기가 거슬린다. 4칸 정도 밑에 누군가 놓아둔 고양이 사료를 비둘기가 열심히 쪼아 먹고 있다(아니 삼켜먹는 건가?). 열심히 먹더니 이내 계단을 순찰한다. 나는 이 구역의 침입자가 된 듯 조용히 숨을 죽인다(덩치는 몇십 배가 큰데 왜 쪼는지 모를 일이다). 비둘기는 과식을 했는지 정처 없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순찰중인 비둘기와 잔뜩 얼어붙은 나

나는 비둘기의 움직임에 얼어버렸다. 경계 태세를 갖춘다. 회색 대가리에 청록색 목덜미, 빨간 장화 같은 발, 빨간 눈, 비둘기의 다리와 머리는 같이 움직인다. ‘머리를 움직여야 걸을 수 있는 시스템인 건가’하고 생각한다. 나에겐 충분히 위협적인 제스처이다.


비둘기는 이내 지루한 듯 푸드덕하고 도보를 가로질러 날아간다.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이름 모를 한강의 물고기는 세 번 점프를 한다. 등 뒤로는 배번호를 단 마라톤 무리가 지나간다. 모든 것이 분주한 곳에 늘어지는 건 나랑 사료를 눈앞에 두고 하품을 하는 고양이 밖에 없다. 한바탕의 작은 소동이 지나서야 나는 어렴풋이 잠을 털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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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을 위한 사료를 훔쳐먹는 비둘기와 아랑곳 하지않고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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