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내가 싫을지라도

서른의 일기

by Song Greem

나는 변호사이자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주미님의 팬이다. 팬이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무언가 덕질(?)같은 것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가진 특색있는 부분들에 애정을 가지고 하는 일이 더 잘 되기를, 그의 일상이 행복하기를 응원하는 것이 팬이라면 아마 팬이 맞을 것이다. 추억 때문에, 혹은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서 하트시그널을 보다가 그렇게 되었다.


그녀가 쓰는 적확하지만 따뜻한 언어들. 세련되었지만 날 서지 않은 포근한 취향. 호불호는 분명하되 유연성 있는 성격.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꼭 같은 모습이 되고 싶다기 보다는 저렇게 나만의 색이 확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경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본인의 색이 잘 묻어나는 영상들을 보다보니 오랜만에 자기 표현의 욕구가 되살아났다고나 할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그런 것들을 잃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영상들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분명 사회초년생일 때에는 남들과 다른 것이 부담스럽고 겁이 나서, 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고유의 색들을 지워내려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은데. 막상 잃어 버리고 보니, 어디서도 무난하게 묻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나니 나는 그게 행복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워낸 부분들이 후회되기 시작했을 때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매일 쌓인 시간의 힘은 생각보다 무섭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생긴 여유에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내가 뭘 좋아했었는지 기억이 희미했고 나에 대한 간단한 질문들에도 쉬이 대답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완전히 길을 잃은 기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수한 길 사이에서 나침반을 잃어버리고 아무런 지표도 없이 방황하는 듯한 기분.


결국 ‘나다움’을 찾고 온전히 받아들여야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들을 하던데, '나 다운 게 뭔지' 그것부터 모르겠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심오한 척 고민해보았지만 늘 그렇듯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일상과 피곤에 밀려 또 다시 무뎌져 갔다. 그렇게 다시금 무뎌지려던 흐름을 또 한번 깬 것 역시 이주미 님의 영상이었다. 사람의 취향은 참 변하지 않는다.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매번 비슷한 것에서 자극을 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식의 한결같음이 좀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번엔 패턴을 조금 바꾸어 스스로를 타박하는 대신 조금 대견하게 여기기로 했다. 매번 시도라도 하려는 것이 얼마나 기특하냔 말이다.


어찌됐든 얼마 전 퇴근 후 저녁거리를 고민하던 평범한 저녁이었다. 식사 준비를 하며 볼 영상을 찾다가 이주미님 유튜브 채널 중 못봤던 영상을 발견해 클릭했다. 영상의 내용은 하트시그널에 함께 출연했던 유지원 님과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주였다. 도중에 책을 주제로 나누는 두 사람의 잔잔한 대화가 좋아 라디오마냥 멍하니 듣고 있다가 귀가 반짝 뜨였다. 유지원님이 최근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댓글에 ‘영상에 유지원 님만의 분위기가 잘 묻어난다’는 내용이 꽤 있어서 흥미로웠다는 식의 대화였다. 본인도 잘 설명할 수 없던 분위기를 정작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다는 내용은 나에게도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라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에 작게 설렘이 생겼다. 그렇게 하면 혹시 나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를 기록하고 내 맘에 들때까지 다듬어가다보면,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다른 사람들이 발견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혼자서는 찾지 못했던 나만의 무언가를 다시 찾거나, 혹은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혼자 끙끙거리고 있을 일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희망이나 기대감 같은 종류의 감정들은 대단하다. 어떤 식으로든 늘어져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에 참 효과적이다. 비록 지속시간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꾸준하게 기록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 주변을, 생각을 차차 기록해봐야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래, 어릴 적 딱히 거리낄 것 없이 썼던 일기들 처럼. 거기서부터 좋아하는 것을 찾고 유심히 살펴보고 그런 시간들을 찬찬히 쌓아나가야겠다. 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솔직하게. 비록 오늘의 내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그렇게 아주 약간은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하지만 어느새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랜만의 글쓰기는 정말 딱 어릴 적 썼던 일기, 작문노트 같다. 꾸역꾸역 시작하지만 쓰면 쓸수록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된다. 좋은 대화상대, 믿을만한 비밀친구에게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가끔은 그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솔직한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뭐, 비록 영화 <안나> 속 안나는 인간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을 쓴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들이 필요한 게 아닐까. 혼자 보는 일기에도 거짓을 썼던 안나는 다른 건 몰라도 행복한 어른은 되지 못한 듯 하니 말이다. 안나가 혼자 보는 일기에 진실하고자 노력했다면 어떘을까, 상상해본다. 다른 사람의 삶이란 쉬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훔친 삶에 불안해하며 결국 모든 화려함 속에서도 외롭다는 사실에 절망하진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렇기에 일기란 건 어른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일기'하면 방학숙제 부터 떠오르기는 하지만.- 어른에게도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되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니까. 그러다 발견한 내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을지라도. 그럼에도 마음껏 나일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렇게 나에 대한 소소한 글이, 기억이 쌓이다 보면 조금이라도 찾겠지, 나다움이라는 거. 그러니 가능한 솔직한 것들을 쓰고 남겨야겠다. -감성팔이나 흑역사를 아주 끔찍하게 여기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좀더 솔직해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 말아야지. 혹여 오늘의 내가 좀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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