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에서 쓰는 글
여행을 떠나기 전에
3박 4일 동안 연차를 두 번이나 써가며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떠나기 일주일 전에 급하게 산 티켓이었다. 관광이라던지 예쁜 사진이라던지 그런 걸 바라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다. 그보단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싶었다. 요즘 내 마음 상태는 최악이었으니까. 밖으로 표출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삭히기를 며칠, 나는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Day1.
제주는 서울에서 가장 쉽게 일탈할 수 있는 외지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내륙에 있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상공을 뚫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제주 여행은 특별하다. 제주 국제공항에 내려 숙소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혼자 여행 몇 번해봤다고 이제는 '혼여 초보' 티는 조금 벗은 듯하다. 첫 끼니를 때우고 싶었던 식당이 문을 닫은 바람에 그냥 그대로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하도리까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숙소는 세화리와 종달리 사이에 있는 조용한 하도리에 잡았다. 종달리는 이전 여행에서 스쳐 지나가듯 들렀던 동네인데 그때 받았던 인상이 좋아서인지 제주 여행을 결심하자마자 종달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러다 인터넷을 통해 종달리 옆 하도리에 조용하고 감성적인 숙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길게 재볼 것 없이 하도리 숙소로 3박 모두 예약했다. 좀 더 알아볼 생각도 없이, 성급하기는! 하지만 서툴긴 해도 내 맘대로 모든 일정과 숙소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혼자 여행의 묘미 아닌가 싶다. 이렇게 혼자 여행만 하다 다른 사람과 하는 여행이 어색해지면 어쩌지.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패디큐어를 받으러 평대리로 갔다. 왜 갑자기 뜬금포로 패디큐어냐고? 이유는 없.. 아니, 샌들 사이로 삐죽 나온 발가락이 왠지 헐벗은 느낌이 들어 3박 4일 동안 친하게 지내잔 의미로 패디큐어를 받으러 갔다.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혼자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 가보는 길을 투벅투벅 걸어 젤 네일 샵이 맞나 싶은 가게에 도착해 패디큐어를 받았다. 처음 만나는 제주도 사람에게 발을 맡긴다는 사실이 유독 어색했다. 패디큐어는 한두 번 받아본 적이 있음에도 괜히 부끄럽더라. (숙소에서 발 한 번 빡빡 씻고 간 건 안 비밀이다.) 그래도 사회생활 이 년 차라고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스킬이 늘었는지, 새로운 사람과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한 시간 반을 보냈다. 빠르고 깔끔하게, 못난 발을 예쁘게 만들어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빠르게 문을 닫는 제주의 저녁. '8시까지 운영'이라 쓰여있는 식당도 라스트 오더는 7시까지라 했다. 제주에 도착해 해가 질 때까지 한 끼도 먹지 못한 터라 배가 무지 고팠다. 아무것도 못 먹으면 편의점 간식으로라도 때워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감사하게도 은인을 만났다. 문어 정식 맛집으로 유명한 한 식당에서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주시기로 한 거다. 원래 같으면 라스트 오더 시간이 훌쩍 지나 문 닫을 준비를 하셔야 하는데, 8시 10분까지 가도 되겠냐며 묻는 서울 여자애가 안쓰러우셨는지 흔쾌히 오라며 문을 열어 주셨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어찌나 감사하던지! 덕분에 제주에서의 첫 끼를 맛있고 든든하게 때울 수 있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목이 탔는데 시원한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니 이거야 말로 '카스-'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상황이구나 싶었다. 내가 마신 맥주 브랜드가 '카x'이 아니었음에도, 이런 게 바로 마케팅의 힘이다. 회사 생각은 말자고 길을 떴지만 순간순간 떠오르는 마케팅적 생각이 야속하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영화 <원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인생영화로 평가받는 영화인데 난 왜 이제야 봤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영화에 대한 감상은 꼭 긴 글로 남길 것이다. 한줄평을 미리 이야기하자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이다. 곯아떨어질 만큼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첫날의 여행기는 여기까지로,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