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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Jul 21. 2019

살아있는 유화, 베르나르 뷔페를 만나고 오다

솔직함이 좋았던 <베르나르 뷔페 展> 후기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베르나르 뷔페 展>을 보고 왔다. 피카소의 유일한 대항마로 20세기 프랑스 회화의 거장이라고 불리던 사람의 첫 한국 단독 전시라 소개받아, 매우 들뜬 마음으로 전시를 보러갔고, 생각 이상으로 인상 깊었다!






나는 이상하게 누군가의 '뮤즈'에게 마음이 간다. 당대 뛰어난 누군가를 사로잡았던 사람은 누굴까 하는 호기심에 그렇다. 이번 뷔페 전에서도 베르나르 뷔페의 뮤즈인 아나벨 뷔페의 매력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전시가 끝난 뒤에 두 사람의 사진을 몇 장 더 찾아볼 정도로 인상 깊었니까. 누군가의 영감이 되는 것만큼 뜻깊은 일도 없을 거다.




국내 최초 단독 대규모 회고전 '베르나르 뷔페 展'



1928년 7월 10일에 태어나 1999년 10월 4일 생을 마감한 그는 지극히 살아있는 그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먼저 말하지만 나는 그림 문외한이다. 잘 모르지만 그림을 느끼려 노력한다.) 이번 회고전에서 좋았던 것은 유화에 남아있는 묵직한 터치감번지르르한 윤기 하나까지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는 거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우는 큰 그림까지도 오목조목 따져가며 섬세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거친 줄만 알았던 유화의 부드러움을 볼 수 있었달까.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 (1955)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현실적이다. 다소 아름답게 미화되거나 현실에 없는 것들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모두 살아있는 사람 같다. 그것들은 내가 될 수도, 우리 곁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 가령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1955)'에 등장하는 여인의 얼굴에선 삶에 대한 고뇌 또는 일상생활에 대한 진중한 생각 등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그것은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떠나간 친구에 대한 생각일 수도, 정말 허무하게도 내일은 뭐 먹지와 같는 일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 그만큼 뷔페의 그림은 현실적이다.





생선장수 (1951)



그림은 인물 한 명을 표현할 때보다, 살아있는 생물(특히 해산물)과 삶의 터전을 그려낼 때 더욱 돋보인다. '생선장수(1951)' 그림에선 당장이라도 생선 비린내가 날 것만 같다.






그의 그림에선 사랑하는 뮤즈, 아나벨 뷔페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1958년, 첫눈에 반해 만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 죽을 때까지 함께 했던 두 사람.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던 그의 붓 터치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아,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워라.







멋지고 아름다운 뷔페 커플! 실제로도 당 손꼽히는 미남미녀 커플이었다고 한다.






나는 곧 미국 뉴욕 여행을 앞두고 있는지라, 뷔페가 미국 여행을 다녀오고 그렸다는 브루클린 브릿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강렬하고 수직적인 검은 선들로 유려하게 건물들을 그려낸 그의 풍경화는 지금까지 보았던 다른 풍경화보다 힘이 있으면서도 감성적이다. 그런 와중에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는 솔직함은 여전하다. 위의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지는 저녁 놀이 한눈에 들어올 것 같다.







있는 사물을 그대로 그려내는 정물화 역시 단순하면서도 사실적이고 힘이 있다. 오히려 꾸며내지 않으니 더욱 수수하다. 마치 사진으로 순간을 찍어낸 듯한 포착감이랄까. 굵고 진한 선으로 이렇게 부드러운 느낌을 낼 수 있다니. 이 작품들은 실제로 보아야 그 감동이 더해진다.






위 그림은 실제로 보면 벽 한쪽을 꽉 채울 만큼 큰데, '역시 너무나 사실적이군' 하면서 지나쳤던 그림이다. 바다 내음이 날 것 같다.






구상 회화의 천재 베르나르 뷔페. 그의 작품 속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너무나 닮아 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들은 시대를 초월해 숨을 쉰다. 베르나르 뷔페는 1997년, 자신이 파킨슨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즈음부터는 죽음에 대한 그림을 빈번하게 그렸다. 삶의 끝에서 붓을 놓는 그 순간까지 현실을 담아내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부드러우나 힘이 넘치는 그의 유화는 꼭, 눈앞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가능하다면 도슨트와도 함께! 이번 전시의 도슨트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어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좋았다. 개인적인 감상을 더하자면 뷔페의 초창기 암울하고 현실적인 그림들이 충격적이 마음에 남는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영광을 누리기란 쉽지 않으니, 전시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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