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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Oct 07. 2019

어른 흉내

90년대 이야기



어른 흉내를 내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어른스럽다는 말은 '의젓한 큰딸'임을 증명한다.


수영장을 다닐 때 엄마 없혼자서 샤워할 줄 아는 멋진 일곱 살 노릇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수영장에 데리러 오지 못했던 어느 날, 엄마가 그랬 것처럼 수영복을 가지런히 벗고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낸 다음 온몸 구석구석 로션을 발랐다. 엄마는 로션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사이에 존슨즈 베이비 오일도 있었던 것 같다.


몸에 로션을 다 바르고 나면 새끼손톱만큼 로션을 짜서 양쪽 볼에 콕콕 찍 톡톡 소리 나게 손바닥으로 두들긴다. 엄마가 해주는 것처럼 뺨이 아릴 만큼 열심히 두드렸다. 그러면 옆에 있던 어느 아주머니가 '어머, 얘. 너는 그런 걸 어디서 배웠니?'하고 호호 웃었다. 그런 반응이 좋았다.


나는 첫째 딸이고 언니니까. 어른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지는 지금이 되어서야, 어릴 적 순수했던 마음이 떠올라 괜히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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