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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Oct 07. 2019

실눈은 뜨지 않아

90년대 이야기


어릴 때는 이상한 잔꾀가 많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허술해서 금세 들통날까 봐 겉으로 드러내진 못하지만.


엄마, 아빠와 나들이를 가면 집에 갈 때쯤 무조건 자는 척을 했다. 그럼 아빠가 안아주거나 업어주니까 진짜 잘 수가 있었거든. 잔꾀가 심한 탓에 나는 무려 네 살 때까지 작아진 유모차를 탔다. 했던 아빠가 혼을 낼 때 조금이라도 덜 혼나려고 앵앵 우는 척을 했는데, 우리 아빤 딸내미 강하게 키운다고 눈물을 무기로 삼지 말라 가르치셨다. 렇게 된통 혼난 뒤론 아무리 혼나도 끅끅대며 눈물을 참았다. 뻥 하고 터뜨리는 게 얼마나 시원한 일인지 알게 된 건 스무 살이 지나고 나서다. 결국 아빠표 훈육의 부작용으로 요즘엔 뻑하면 잘 운다. 어릴 때 덜 울어서 어른이 되니 잘 운다.


유치원 인가 어디 수련회에서는 눈을 감으랬는데 실눈을 떴다고 혼이 났다. 나는 내가 살짝 눈뜨는 것은 밖에서 못 보는 줄 알았다. 그날도 무슨 일인지 눈을 감으라고 했었는데, 나는 당연히 무슨 상황인지 궁금했으니까 실눈을 깨끔 떴다. 그런데 웬걸 '실눈 뜨면 안 돼!'하고 호통이 떨어진 것이다. 그 순간 발가벗겨진 기분에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아 민망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남들이 하나도 모를 줄 알았거든. 내가 남들 속을 모르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요즘도 실눈은 절대 안 뜬다. 남들이 보는 줄 알면서도 안 보는척하기 싫거든. 그래, 그런 거라도 정직하고 싶다. 괜한 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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