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사원 Oct 07. 2019

이상한 나

90년대 이야기


어릴 때 티비를 보다 보면, 프로그램 뒤에 나오던 '제공'을 기억하는가.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제공'이라 부르는 그것은 해태제과니 농심이니 하는, 돈 주고 광고하는 기업들의 묶음이다.


그 시절 사랑했던 카드캡터 체리의 주제가가 희미해질 무렵에는 '제공'하면서 여러 기업 이름이 주욱 나열다. 그리곤 실제 나열된 순서대로 제품 광고가 이어지는데, 이게 꽤나 신기했나 보다. 무언가 적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누가 '제공'한 사람인지 작은 공책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 놓치는 때가 허다했지만 바로 뒤 광고에 나오니까 다시 보고 적으면 그만이다.


순서 한 번 틀어지지 않고 방영되던 광고 나열에 사실 검증이라도 하듯, 광고가 나올 때마다 기업 이름에 줄을 그었다. 다섯 개, 열개 꽉 차게 줄이 그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예나 지금이나 나는 성취의 동물이다.


나의 호기심은 항상 이상했다. 해리포터를 보았을 땐 해리와 같은 마법사가 어디엔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한국 호그와트에는 내가 가야 하는 게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했다. 엄마에 대한 반항심이 짙어질 때면 나의 근원지를 마법 세계로 옮겨 보았다. 생각해보니 마법사에 대한 갈망은 매직키드 마수리와 더욱 함께 했던 것 같다. 해리보다 더, 그의 영향이 컸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한때 나는 굉장히 높은 자존감에 사로잡혀 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믿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환상이 깨진 건 고등학생 즈음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나는 내가 특별한 이십대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이상했다. 누가 뭐래도 정상은 아니었다. 겉으로 톡톡 튈만큼 센스있는 편은 아닌데 마음만은 중구난방이다. 순간적인 오판으로 사고도 많이 쳤고, 이해 못할 행동에 흑역사도 많다. 그 많은 것들은 일일이 적어보고 싶지 않으니, 기억 속에 묻어 두어야지. 잊어버려야지.


그래도 쩔래.

여전히, 나는, 매일, 꽤나 이상한 사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눈은 뜨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