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영화를 이해할 때 나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등장인물의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이 영화는 그저 등장인물의 호흡에 맞추어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1부, 2부, 3부로 나뉜 뚜렷한 서사에 인물들의 감정선이 너무나 명확해서, 별다른 부가설명 없이도 긴 여운을 남길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영화다.
한때 파격적인 영화로 이름을 날린 만큼, 영화 <아가씨>에 대한 다양한 리뷰들도 많다. 명쾌한 서사 덕에 거의 모든 해설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딱 한 가지가 아닌가 싶다. 속박에서 벗어난 히데코와 그를 구하는 구원자 숙희. 사실 이거 하나면 소위 말하는 걸크러쉬니 하는 리뷰어들의 호들갑도 모두 다 설명된다.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류'의 영화가 낯설었던 나는 노골적인 장면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고, 한 번 감정선을 놓치고 나니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한껏 집중해 <아가씨>를 보고 나니 왜 이걸 이제야 봤나 싶다. 감회가 새롭다.
아가씨의 명대사를 하나만 꼽자면, 이제는 유행어처럼 번진 바로 '그' 대사를 꼽겠다. 3부 중간에 이모부의 서재에서 책을 찢어 망치고, 저택에서 벗어나 도망치는 장면에서 히데코가 내레이션으로 읊조렸던 대사.
겨울이면 훔친 가죽 지갑들을 엮어 외투를 만들었다던 유명한 여도둑의 딸.저 자신도 소매치기, 사기꾼, 도둑.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숙희.
영화는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영웅 로맨스를 당연하지 않게 풀어낸다.
설마 해피엔딩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끝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결말을 보고 나니 만족스러울 만큼 마음이 후련해졌다. 누군가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소개해달라고 한다면,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여자 주인공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영화라 말하겠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포스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한 번쯤은 감상해 보시기를 권한다. (나의 경우는 포스터가 무서워서 선뜻 보지 못했는데, 넷플릭스에 업로드된 것을 보고 다시금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