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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가 May 02. 2024

6. 곰양, 다시 일하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처음 면접 봤을 때부터 원장의 말이 범상치 않았다.


 "나는 내가 사람을 뽑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와있는 당신이 날 면접 보고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선택은 당신의 몫이에요."


 순간 벙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오너도 있구나.

 면접 보러 오는 사람에게 선택을 맡긴다니.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어서 자신이 원하는 이상의 직원상을 나에게 장황하게 설명했다.


 "저는 직원이 모든 걸 주도적으로 했으면 해요. 저에게 잘하는 거보다 환자에게 잘하길 바라고, 치과를 위해주는 발전적인 분이라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월급을 드릴 거예요."


 그리고 그런 직원이 될 자신이 있으면 여길 선택 해달라. 자기 자신의 능력은 본인이 잘 아는 거라면서.

 오로지 나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보통 면접을 보면 간단히 근무조건과 월급협상 후 연락드릴게요. 혹은 바로 날짜 조율해서 출근 바로 하라는 말을 듣는 게 보통이었다. 나한테 직접 일할지 말지 선택하라는 경우는 난생처음이었다.

 "해보겠습니다. 제가 그런 직원이 되겠습니다."라는 당당한 선언을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성격 탓이다. 평소 생각이 많고 신중한 나로서는 낯설기만 한 원장의 말에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답하며, 한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상담실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실장이 나에게 다급히 다가왔다. 그리고 환자대기용 소파에 나를 앉히며 물었다.

 "원장님이 뭐라고 하셨어?"

 이미 실장과는 원장과 면접 보기 전에 간단한 치과 분위기나 복지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조금 친근해진 상태였다. 나는 원장에게 들은 말을 실장에게 전하며 그냥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장은 고민할게 뭐 있냐며, 여기서 바로 일하라고 말했다. 자신의 느낌을 믿는데, 내 인상이 마음에 든다고, 같이 일하고 싶다고! 자신만 믿고 같이 일하자고. 이렇게 말하는 실장도 처음이었다.

 원장도 평범하지 않고, 실장도 평범하지 않다. 과연 여기서 일하는 게 내게 좋은 선택일까.

 

 집에 가서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래도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단,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 해보자! 그까짓 거 뭐든지 부딪히면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다잡았다.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원장이 원하는 대로 준다고 한 월급 때문이었다. 세속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그곳을 그만뒀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단시간이기도 했다. 최소 1년은 채우고 그만두는 나인데, 이렇게 빠른 탈출을 감행하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일하는 방식이 이제껏 내가 일해온 곳과 판이하게 달라 적응하는 것부터 일이었다. 거기다 내가 해도 되나 싶은 일들도 해야 했다. 며칠 일하자마자 원장이 원하는 직원상에 내가 맞출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여기서 나갈 마음에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만두려는 마음을 잡은 건 실장이었다. 처음부터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녀는 유난히 나에게 친절했다. 일은 힘들지 않나 신경 써주며, 내가 적응하기 힘들어 보이자 뭐가 문제인지 얘기도 들어주고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며, 정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를 잘 챙겨줬다. 같이 일했던 실장 중에서 이렇게 다정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실장님 밑에서 일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조금 저 참고 일해보자. 그렇게 마음먹기도 했다.


 그 마음을 바뀐 것 역시 실장 때문이었다. 얼마 안 되어 실장은 나에게 자신이 쓰는 다단계 제품을 홍보하며 내가 그곳에 회원가입하고 구매하기를 원했다.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이젠 더 이상 망설일 게 없었다. 나는 그날로 그만두기로 했다.


 원장 하고는 깔끔하게 퇴사 얘기를 나누었다.  

 그냥 내가 원장님이 원하는 직원이 될 수 없을 거 같다고, 빨리 그만두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 같다고.

 실장얘기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오픈멤버인 그녀를 원장이 무척 신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떠나는 입장인 사람이 뒷말을 해서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다.

 원장은 마지막으로 월급을 더 준다는 말을 꺼냈지만, 나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세속적인 선택을 한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적시킨다는 건 어렵다. 심지어 돈이 걸려있는 경우라면, 돈을 받는 나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갑의 비위를 맞춰야 되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씁쓸한 현실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많은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남의 돈 받기 힘들다. 착한 사람은 사회생활에선 약자다. 여우들을 조심하자. 일하는 사이는 일하는 사이일 뿐. 속마음을 다 말하지 말자.


 일은 갈수록 익숙해지는 반면,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언제부턴가 어려워졌다. 속을 내보이기가 힘들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깊은 사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냥 적절한 거리를 두고 겉치레식으로 대화를 나눈다. 일을 그만두면 다시 연락하지 않는 사이.

 그 정도의 사이가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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