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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가 May 07. 2024

7. 곰양, 양심이 찔리다

 

 하루는 실장이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어제 남편이 야근으로 늦어 학원 간 아들을 데리러 간 김에, 아들과 둘이 오붓하게 저녁이나 들어가기로 했어. 그래서 학원 근처 소고기 집에서 소갈비 3인분에 된장찌개와 밥을 시키고, 등심 2인분을 추가해서 먹었어. 맛있게 다 먹고 계단대에서 직원에게 계산한다 말하니까, 직원이 '육만 팔천 원입니다.'라는 거야. 나는 '어라? 생각보다 얼마 안 나왔네.'라고 생각하고, 다시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고 속으로 되뇌며 계산해 보니, 딱 추가한 등심이 빠진 금액인 거야. 그대로 조용히 계산하고 나와 아싸라고 외쳤어. 운이 좋았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웃는 그녀에게 나는 아무 말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네요.'라고 같이 따라 웃을 수 없었던 건 내 기준으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였다면... 등심이 빠졌다고 말하고 같이 계산했을 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당연한 행동이니까. 하지만 그녀에겐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평소 그녀가 자신의 말만 맞다고 생각하는 고집불통 꼰대였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얘기를 웃으면서 하는 모습에 마음속 거리는 더 멀어졌다.


 다른 사람에게 내 기준의 도덕적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런 사회생활에서 기본적으로 지킬 건 지켜야 되는 거 아니겠나. 정직하게 사는 건 생각보다 쉽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같은 상황이라면 가게 주인의 입장이 되어서 혹은 가게 주인이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돈을 안 내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다음 행동은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한점 부끄럼 없는 인생은 없다. 분명 나도 어렸을 땐,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지. 창피한 일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버린 적이 없다. 그런 사소한 행동부터 양심에 찔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건 나에겐 자연스러운, 당연한 일이었다.

 나의 도덕성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웃으면서 말하던 그녀의 말에 얼굴이 붉혀지는 건 공연히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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