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형 May 09. 2024

8. 곰양과 꼰대 실장

 

 "너 진짜 사회생활 못 한다."


 뜬금없이 실장이 말했다. 나는 막 한입 먹은 빵또아를 손에 든 채로 실장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내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넌 사회생활을 하려면 커피를 안 마셔도, 커피 한 잔 타 드릴 까요? 물어보고 한 잔 타 준다거나, 지금처럼 아이스크림 먹을 때는 물어보고 같이 먹자고 하든가, 그런 센스가 있어야지.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정이 없니! 같이 일하는 사람을 배려할 줄 몰라서 어떡해. 사회생활 참 못하는 걸보고 답답해서 말해주는 거니까, 잔소리로 생각하지 말고 들어."


 그리고 속이 후련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날 바라보는 실장의 모습은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게 나에겐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저게 잔소리 아닌가? 자신의 말은 일절 틀리지 않다는 듯, 충고라고 해주는 말은 나에겐 그저 식탐 많은 사람의 투정으로 들릴 뿐이었다.


 순식간에 나는 정 없고, 배려심 없고,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카페인 영향을 많이 받아 평소 먹지도 못하는 커피를 굳이 물어보는 수고를 감수하며 내가 왜 당신에게 타 줘야 하며, 당신이 방금 먼저 먹은 빵또아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늦게 먹는다고 내 몫을 나눠주는 게 당연한 듯 요구하다니, 이해되지 않는 괴상한 논리다.


 하지만 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싸움만 될 거 같아, 나는 그냥 말을 돌렸다.

 "그럼 안에 다른 아이스크림 있으니 드세요." 

 '그냥 내가 참고 말자.' 매번 그렇게 장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 종종 꼰대 실장은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강요한다. 자신의 말만 맞는 것이다.

 상사가 꼰대면 매일이 피곤해진다. 당연한 걸 지적하고, 조그마한 것도 자기 신경에 거슬리면 입을 떼려고 한다. 경력 10년인 내가 어련히 알아서 다 하는데, 알고 있다 해도 지적하지 않고는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상처가 될 때가 많았지만 굳이 다툼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내가 참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실장이 화를 내는 포인트는 종잡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딱되면 칼같이 준비한다고 화를 내고, 좀 늦게 먹으면 안 되냐고 성을 내고, 마칠 때 빨리 옷 갈아입는다고 화를 내고, 권하는 음식을 먹기 싫어 조심히 거절하면 왜 안 먹냐고 소리친다.

 자기 성질대로 말을 다한다. 그 말을 듣는 나는 당연히 기분이 상한다.


 그렇게 실장에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 곪아 터질 지경이 돼서야 내가 겨우 "조금만  안 내고 말해주시면 좋겠어요." 한마디를 떼니까,

 "네가 오해하는 거 같은데, 내가 화내는 게 아니야. 언니로서  한마디 그냥 하는 건데, 너는 삐딱하게 받아들이네." 그녀는 바로 반박하듯 말했다.


 나 참고 참다가 풀어보려고 겨우 꺼낸 말이었다.         

 그 말도 무시하고 날 속 좁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그녀와 나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더 이상 못 참겠다. 그냥 내가 그만두고 말자.'


 그때가 일한 지 막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미 그전부터 1년만 채우고 그만둘 생각이었기에 같이 일하는 동안은 참고 잘 지내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강력한 꼰대력을 견뎌내기엔 강해졌다 생각한 나의 멘은 약하기 그지없었다.




  맨날 같이 붙어있는 사람이 이러니까, 나는 입을 다물고 대화는 일에 필요한 것만 하게 되었다.

 그 정도로 실장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에겐 큰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쓸데없는 말 따위 한 귀로 듣고 흘려야지. 무시해야지.' 하면서도 나의 성격은 그게 쉽지가 않다.

 정말 나는 사회생활을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나는 억지로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고 싶은 마음은 일도 없다.


 그렇게 원장에게 퇴사 얘기를 꺼내려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꼰대 실장과 나의 관계는 갑작스럽게 그녀가 그만둠으로써 끝났다. 

  

 나는 당황했다. 선수를 뺏긴 기분에 원장에게 그만둔다 말했다는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저 때문에 그만두시는 거면 그만두지 마세요. 저도 곧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아니야. 내가 그만 쉬고 싶어서 그만두는 거야. 치과에서만 20년 넘게 일했고 여기서만 5년이나 일했잖아. 이제 좀 쉬다가 치과일 말고 다른 거나 하려고."


 그런 답도 뭔가 겉치레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이란 생각에 찝찝함을 풀어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는 뒤늦게나마 나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냈다.


 "사실 일하면서 너무 외로웠어. 늘 내 말에 웃으면서 "네네!" 하는 동생들하고만 일하다가, 너는 좀 무뚝뚝한 타입이라서, 나와 너무 다르니까 힘들더라."


 생각 외의 말이었다. 외롭다. 내가 늘 느끼는 걸 그녀도 같이 느끼고 있었다. 번엔 나도 속마음을 드러내 말했다.


 "저도 외로웠어요. 실장님이 늘 화만내시고 제 말은 무시하셔서요. 전 제말을 조금이나마 들어주길 바랐을 뿐이었는데..."

 

 우린 마지막에서야 서로의 외로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관계가 끝났다.

 


 

 나는 싸움이 싫다. 내가 좀 져도 그냥 그 상황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좋다. 살면서 싸움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말싸움, 특히 하고 싶지 않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굳이 왜 해야 하는가. 속으론 반박할 말들이 많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긴 싸움이 될 것 같아, 조용히 입을 다문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참 자존심이 없다. 무시당하고 가만히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뒤에 상황이 더 싫었다. 싸우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지내지? 불편한 상황을 생각하면 그런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었다. 그냥 내가 참고 마는 게 속편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사회생활을 적응했다고 생각한 나를 좌절시킨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회생활 별별사람은 끝이 없었다. 




 

이전 07화 7. 곰양, 양심이 찔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