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형 May 16. 2024

10. 곰양, 달라지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눈치를 잘 보는 아이였다. 무언가 잘못한 게 있으면 땅을 파고 들어갈 정도로 자책하면서, 누구한테 나쁜 말을 들으면 속에 꽁꽁 담아둔다. 말실수 한번 하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자기 전에 다시 떠올리며 이불을 걷어차곤 했다.


 생각은 얼마나 많은지 이미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사서 걱정하는 타입이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땐 결정장애가 심해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스스로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 내가 처음 퇴사를 결심할 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없이 고민하다가 용기 낸 결과였다.


 하지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웠다. 그렇게 내가 일하며 그만둔 치과는 12년 동안 5군데였다. 사람 때문에 힘들면, 그만두면 . 나의 편안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편한 해결책을 찾았다. 그게 맞다고 믿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고 여러 군데를 옮겨 다니며 이게 백 점짜리 정답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점점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드는 걸 알게 되니까, 나중엔 정착할 곳을 찾고 있는 날 발견했다. 냉정한 현실 앞에 이젠 퇴사가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었다. 이젠 물러날 곳 없는 막다른 절벽 위에 내가 서있었다.


 

 나는 퇴사 후 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다. 때론 혼자서 때론 가족과 때론 친구와 함께,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삶을 회복. 일하는 동안 받은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여행을 하며 훌훌 털어다. 나에게 여행은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일할 에너지를 다시 얻고 오는 것이다.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도 너처럼 일 그만두고 여행 가고 싶다."

 나와 만날 때마다 친구가 하는 말이었는데,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너도 일하다 너무 힘들면 그만두고 떠나도 괜찮아! 우리는 다시 일 구하기 쉬우니까!"

 "응! 다음엔 나도 그만두고 떠나겠어!"

 그렇게 우린 각자의 치과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12년 동안 한 치과에서 계속 일했다. 말로는 나보다 더 많이 그만뒀는데, 실제론 불만을 참아내고 이겨낸 것이다.

 그 친구를 만나면 나는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현실을 알고 있으니까. 상황이 달라졌다.


 이젠 반대가 됐다. 12년 동안 그만두지 않고 일 친구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는 그만두고 새로운 곳으로 갈 용기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사회생활을 잘 이겨낸 결과로 보일 뿐이다.

 퇴사의 이유를 생각하면 내가 너무 쉽게 사람관계에서 도망친 건가 싶어서 말이다. 내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생겨났다. 




 

 퇴사를 하면서 사회생활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마냥 착한 곰에서 실속을 차리는 곰이 됐다. 사람에 상처받는 건 똑같지만 인내심이 점점 더 길어졌다. 지금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현실 괴롭지만 재 상황에 적응해 아내는 것이다.


 이제는 안다. 막다른 절벽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시야를 넓혀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 해결책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이전 09화 9. 곰양, 퇴사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