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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리 Oct 21. 2023

아무도 몰랐던 나의 본업

방랑자의 바다수영;  지금 잘 방랑하고 있는가?

수영을 배운 지 1년 5개월,
바다로 뛰어들었다.

해수욕이나 물놀이가 아닌 진짜 바다수영은 처음이었다. 수영장은 수심이 깊어도 안전요원이 있고 파도가 없지만, 자연의 바다는 깊이를 알 수 없으며 파도도 예고 없이 다가온다.


따라서 평소보다 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 대자연을 마주한 우주먼지로서, 조류와 파고를 미리 확인하고 체온을 지켜줄 슈트를 입고 효율을 높여 체력을 아껴줄 핀을 신고 위급상황 혹은 지칠 때 의지할 부이를 연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즉흥곡의 선율처럼 오고 가는 파도와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운 수면을 마주하면 꼴깍, 침이 넘어간다.


첫 바다수영 스폿으로 동해 바다를 선택했다. 조금씩 물결로 스며드는 해변이 맞닿아 있지 않고 곧장 깊은 수심으로 뚝 떨어지는 바다 앞에서 호흡을 골랐다. 더 이상 물은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낯설었다. 6년 전 물에 빠졌던 기억이 심장을 두드렸다'어이, 진짜 괜찮겠어?'. 물 공포증은 극복했지만 수영장을 넘어 바다로 뛰어드는 건 한 단계 더 높은 각오가 필요했다.


몇 초 혹은 몇 분을 망설였을까. 부이를 믿자, 바다를 믿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믿자. 그렇게 뛰어든 바다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열을 맞춰 헤엄치는 물고기 떼, 꼬르륵 꾸르륵 ASMR 같은 물소리, 그냥 짜다는 말로는 부족한 소금 바닷물, 냉정과 평화를 모두 품고 있는 요람 같은 바닷속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수영은 이렇게 내 세상을 넓혀 주었다. 망망대해에 떠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자 온 감각이 찌릿하게 깨어나고 아득해지길 반복했다. 계속 물을 겁내고 수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세계가 이렇게나 아름답고 넓은데, 바다처럼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또 얼마나 많을까.



너 무슨 일 해?라고 묻는다면.

늘 어떤 일을 해도 본업이 아니라 부업 같았다. 언젠가 할 천직을 위해 거쳐가는 느낌이 들고 나의 진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직 본업으로 삼을 만큼 마음이 통하는 일을 찾지 못했거나, 어쩌면 그런 일이란 현실에 없는 허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년의 고민 끝에 깨달았다. 사실 내 본업은 방랑자인 거라고. 그게 맞다면 나는 일찍이 천직을 찾아 아주 잘 해내고 있는 거라고.



<쉬헐크>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멕시코 해변가에 있는 헐크의 거주지는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런데 성공한 미래의 휴양지 같은 멋진 집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멈칫했다.


분명 행복한데, 그 장면이 변함없이 지속되면 갑갑할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은 행복할지라도, 그 모습으로 영원한 건 내가 바라거나 만족할 수 있는 미래가 아니었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즐기며 변화에 적응한다. 그리고 이 반복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바다 앞에서 떨리던 마음이 입수와 함께 솜사탕처럼 녹아 그저 즐거웠던 것처럼 떨림과 이완의 변주가 인생이란 악보에 꼭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늘 새로움을 탐구하고 배움을 갈구하며 도전의 떨림을 즐긴다. 그게 없으면 허전하고 무기력하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멀리멀리 날아가는 씨앗, 민들레 홀씨처럼 내게는 방랑이 제격이다.



지금 나는 힘껏 헤매고 있는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수영을 배워 라이프 가드가 된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올해 초에는 프랑스어를 배워 시험을 보고, 여름에는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얼마 전 자격증 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을에는 건축과 조경에 관심이 생겨 또 자격증 시험을 봤다.


끊임없이 영역을 넓히고 제대로 맛을 볼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게 내 직분이자 천명이니까. 자칫 중구난방 정신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 헤매는 만큼 내 땅이라고. 태어난 김에 광개토 대왕님이 되어 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나는 바다 수영을 통해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부딪히는 만큼 허락해 준다는 사실을. 그러니 용기 내어 삶을 개척해 나갈 생각이다. 나를 믿고 세상을 믿고 멀리 헤엄쳐 가보자. 그러면 늘 그랬듯 멋진 교훈을 얻고 변화에 전율하겠지.


파도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언제 잔잔했냐는 듯 몰아치고, 언제 몰아쳤냐는 듯 태연하게 일렁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비슷하지 않은가. 보장된 미래는 신기루와 같은 요즘, 예측할 수 없이 급변하는 세계에서 때로는 동동 표류하고 내키면 이리저리 방랑하다가 여기다 싶은 곳에 뿌리를 내리는 삶도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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