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거주지가 멀어 자주 만나는 건 아니지만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연락하며 이어진 인연이었다. 술 한 잔과 함께 그간의 공백을 이야기꽃으로 채우다 보니 몇 년 새 더욱 어른이 된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결을 여러 인간관계를 거치며 깨달은 짬이라고 결론지었다.
"몇 년 간 다양한 사람을 겪으며 많은 걸 깨달았어."
"깨달은 걸 간략하게 정리하면 뭐야?"
"우선, 그들의 상식이 늘 내 상식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쎄한 사람은 쎄한 게 맞으니 내 촉을 믿어도 된다는 것. 안 맞는 사람은 안 만나도 된다는 것. 등등."
그러니까 누구보다도 나를 믿고, 내 눈치를 가장 먼저 살피고 챙겨야 한다는 것. 그래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애초에 관계는 언제든 시작되고 끝날 수 있는 가변적인 속성을 지녔으니 붙잡거나 놓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영원할 거라는 착각은 종종 고통스럽다. 지금 문제를 겪고 있다면 잠깐 멈춰서 소리치자.
문제, 넌 영원한 게 아니야!
그 문제가 인간관계든, 몰아치는 시련이든, 순간적인 고통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이든 간에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모든 건 어떤 형태로든 지나가고 변하기 마련이다.
또, 영원할 거라는 착각은 도리어 안일 혹은 권태를 주기도 한다. 으레 문학 속 영생을 사는 존재가 삶을 지루해하는 것처럼, 그리고 집 앞 명소는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번도 가지 않는 것처럼, 또는 오래된 소중한 인연을 당연하게 여기고 귀찮아하다가 잃고 후회하는 것처럼.
그러나 모든 것이 바뀌는 세상에서 단 하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평생 '나'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더더욱 내 삶의 기준은 나여야만 한다. 영원하지 않은 세상에서 평생 나로 살며 배워야 하는 것은 두 가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다.
나는 한때 물이 두려웠지만 그건 물의 속성 자체가 공포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경솔한 실수로 물에 빠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로 살고 있기에 시간이 지나 다시 진지한 태도로 더 안전한 환경에서 수영을 배우고 물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도전을 좋아하고 극복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니까.
빛도 오래 받으면 바래듯 때로는 그늘이 필요하다. 고인 물은 썩으니 흐르게 두면 된다. 그러자 미련이 사라지고 언제 바뀔지 모르는 현재가, 지금이 가장 절정일지 모르는 인연이 오히려 더 소중해졌다. 과거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내가 지금은 라이프가드라면, 미래에는 또 어떤 모습일까? 좋은 의미로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 기대를 하게 된다. 지금도 변해가고 있을 세상을, 관계를, 그리고 나를 흐르는 강물처럼 바라보고 즐기며 사랑하자. 지금이 영원할 거라는 순진한 착각을 물에 띄운 낙엽처럼 흘려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