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상스포츠로 서핑을 배우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추천하고 싶은 작업이 하나 있다. 바로 BGM으로 아이유의 '어푸' 노래 틀기! 흐름이 깨지 않도록 한 곡 반복 설정을 하는 것도 잊지 말자. 음악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그 위를 헤엄칠 활자들을 적어보겠다.
생애 첫 서핑을 다녀왔다. 수영을 배우고 처음으로 도전하는 수상스포츠였다. 얼마나 재밌을지 설레는 마음과, 처음인데 잘할 수 있을지 떨리는 마음이 공존했다. 내가 간 곳은 인공 파도가 치는 야외 서핑장이었고, 파도가 규칙적인 크기로 치는 만큼 바다보다 안전하겠다는 믿음이 컸다. 처음 서핑을 배우기 딱 좋은 장소였다.
처음에는 지상에서 기본적인 용어와 자세를 배웠다. 파도타기에 성공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 쓰는 수신호부터, 보드에서 자리를 잡고 일어나는 방법을 배우며 든 생각은 '빨리 물에 들어가고 싶어!'였다. 5월의 태양 아래 전신 슈트를 입고 버피테스트와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는 건 좌 습식 우 건식 사우나에 반반 몸을 나눠 갇힌 기분이었다.
하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자 생각보다 차가워서 놀랐다. 그리고 뒤이어 밀려오는 파도가 각오보다 크고 거세서 또 놀랐다. 멀리서 볼 땐 작아 보였던 파도가 몸을 덮칠 땐 어찌나 억센지 보드를 요령 있게 잡고 버텨야 했다. 그래서 처음엔 조금 겁이 났다. '무섭다'는 감각을 느끼자마자 '물 공포증이 도지려고?!' 걱정했지만 직접 파도를 타기 시작하니 달라졌다.
처음에는 강사님이 뒤에서 파도에 맞춰 보드를 밀어주면 그 위에서 자세를 잡고 재빨리 일어서 파도를 탔다. 파도를 타려면 일단 보드 위에 서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고역이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자랑하자면 시도할 때마다 모두 일어서는 데 성공했고(후훗), 그 순간의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파도를 기다리며 재정비할 땐 어서 다음 파도가 오기만을 바랐다.
초보 서퍼가 파도를 타는 법은 다음과 같다.
보드에 엎드려 정면을 주시한 채로 손을 갈비뼈 옆에 두고 기립근의 힘으로 상체를 든다. 고개를 뒤로 살짝 돌려 파도가 오는지 체크했다면 다시 앞을 보고 손을 저으며 패들 한다. 그다음이 중요하다. 파도가 나를 밀어주는 순간 몸을 일으킬 태세를 취하며 푸시, 준비가 되면 중심을 잡아 업! 무게중심은 앞발에 두되, 머리가 앞발 보다 더 나가면 앞으로 구르게 되니 주의한다. 이렇게 서서 가는 게 파도를 직선으로 타는 법이다. 파도를 타고 가다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려오는 것도 중요한데 뭐든 순서대로 해야 한다. 준비자세처럼 다시 자세를 낮추고 조심히 내려온다. 익숙해졌다면 이제 다음 레벨로 넘어가 사이드로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서핑할 땐 파도가 와서 밀어주고 일어서는 타이밍을 스스로 익혀야 한다. 이만한 크기와 속도의 파도면 언제 어떻게 내 보드를 밀어주는지 수많은 시도로 알아가야 한다. 파도를 타는 순간에는 오직 몸의 감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물 위를 거침없이 쭈욱 미끄러지는 기분은 직접 느껴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상쾌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보드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 그러니까 차가운 물속으로 풍덩 빠질 때 오히려 더 짜릿하기도 했다. 물에 빠져 일단 보드를 수습하며 테일을 잡고 다음 파도를 타기 위해 돌아가는 동안 방실방실 웃으며 방금 탄 파도와 내 자세를 곱씹을 때가 가장 즐거웠다.
파도를 타는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이다. 짧다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정말 짧다. 파도를 기다리고, 보드에서 내려오고, 지난 파도를 돌이켜 보고, 다음 파도를 각오하는 시간이 서핑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한다. 그러니 서핑을 즐기고 싶다면 이 과정까지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파도는 늘 오니까. 그리고 첫 번째 파도를 타는 나와 열 번째 파도를 타는 나는 다를 테니까.
인생도 서핑과 비슷하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바다에 몰아치는 파도들이 있다. 우리는 파도를 타기 위해 갖은 시도를 하겠지만 처음엔 녹록지 않다. 운 좋게 잘 탈 때도 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도 많다. 쉬고 싶을 때 반갑지 않은 파도가 몰아칠 수도 있고, 이번에는 좀 잘해보자 각오했는데 기다리는 파도는 안 오고 멍하니 떠있어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파도를 멋지게 타는 한 순간을 위해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잡고 중심을 잡고 넘어지길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반짝이는 물결 위에서 나만의 완벽한 파도를 타는 찰나에 깨달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파도를 기다렸지만, 사실 지금까지 달려온 모든 시간을 사랑했다고.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수많은 서퍼들이 바다로 나가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