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에는 물이 무서웠던 내가 지금은 바다와 워터파크를 누비고 있다. 한동안 검정 옷만 입던 내가 요즘은 형형색색의 옷을 찾고, 사람을 잃는 게 두려웠던 내가 지금은 남보다 내 눈치를 더 본다.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이 하나둘 탈피하듯 변해간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물 공포증이 있던 내가 지금은 라이프가드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며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나 보다.
이런 말을 들었다. 10년 이상 오래 인간관계를 유지해 본 사람이 진국이라고. 사람을 오래 만나는 건 아무래도 큰 인내심과 성실함을 요하므로 종합적인 인성을 가늠해 보기 좋은 척도라는 주장이다.
당시에는 썩 맞는 말로 들렸기 때문에 아직 10년 지기가 없는 나로선 궁핍한 인성을 자책했다. 내가 참을성이 부족하고 됨됨이가 덜 돼서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가스라이팅이었구나 싶다. 이제는 깨달았다. 그동안 맞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한두 달 뒤면 안 볼 사람에게까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신념을 내려놓기도 하면서.
어느 상황에서도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건 나구나. 그래야 결과가 어떻든 후회가 적구나.
10년 지기가 인성의 척도라는 주장은, 어느 날 어느 책에서 나타난 구절이 와장창 깨뜨려 힘을 잃었다.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7년에 한 번씩 네트워크를 바꾼다고 한다. 아무래도 환경이 바뀌면 자연히 자주 만나는 사람도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몇 년 지기 친구가 몇 명 있고 없고 하는 말은 어쩌면 평생 한 곳을 바위처럼 버틴 사람의 자랑일지 모른다. 10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키는 삶도 대단하지만, 끊임없이 고이지 않고 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삶도 존중받아야 할 여러 인생 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오랜 시간 한 곳에서 깊게 교류하기보다, 여러 장소 여러 시간을 살며 다양한 사람들과 얕고 깊은 관계를 맺는 다채로운 삶이 더 끌린다.
전에는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사람이 부럽고 닮고 싶었다면 이제는 그런 삶은 그런 삶대로 인정하고 내 삶도 내 삶대로 긍정하게 되었다. 어릴 땐 사람을 잃는 게 두려워 스스로를 지우고 타인의 기분을 살폈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희생했지만 그렇게 쌓은 관계는 거짓이고 착취라는 판단이 여러 관계를 거치고 나서야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계란 없고, 있다면 그건 방부제의 효과이며, 방부제는 몸에 해롭다. 타인의 기분을 살피는 것도 좋고 배려도 좋지만, 그 의도와 방식이 스스로를 해쳐선 안 된다. 지금은 영원이라는 착각을 내려놓고 자연스러운 변화를 즐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