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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리 Jun 13. 2023

평가가 목적이 될 때 우리가 잃는 것들

합격을 위해 수영하기 혹은 자유롭게 수영하기 ft. 영화 <4등>

딱 두 번, 그토록 즐기던 수영이 싫어진 적 있다.

첫 번째는 수영으로 시험을 봐야 할 때, 두 번째도 수영으로 시험을 봐야 할 때다.


자기 계발과 취미로 시작했던 수영은 수상 인명구조요원을 준비하면서 잘해야 하는 것으로 전락했고, 몸이 마음을 따라 주지 않을 때마다 커다란 자괴감을 느꼈다. 남들은 하는 걸 나는 못할 때, 출발선 앞에서 벅찬 긴장감을 느낄 때, 수영의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작아지고 움츠러드는 스스로를 느꼈다. 그 와중에 내가 고수한 태도는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교육과정에 쏟은 노력이라는 매몰비용과, 수영을 좋아하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땄다. 그런데 그간의 고통을 잊고 성취의 맛에 취한 나는 동기들을 따라 생활스포츠지도사까지 도전하게 됐다. 그때 내 안의 진심은 이렇게 속삭였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건 계획에 없었잖아?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좀 쉬는 게 어때?' 하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중독되어 홀린 듯 발을 들였다. 두 번째로 수영이 싫어진 시발점이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한 값은 꽤 썼다.


그렇게 또다시 시험을 위해 수영을 했다. 하지만 수력이 부족해서인지, 기술과 힘이 부족해서인지, 마음이 안일했기 때문인지 합격선에 미치지 않는 실력에 맴돌았다. 실기에서 합격하기 위해서는 접영-배영-평영-자유형(일명 IM)을 일정 시간 안에 돌아야 한다. 그러나 기준에 비해 나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그리고 또다시 느끼는 체력적 한계를 견디기엔 이미 마음과 정신이 많이 물러진 상태였다. 자연히 수태기가 왔고, 필기에 합격한 것이 무색하게도 실기 시험은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수영하며 부족한 점을 발견할 때마다 반가웠다. 그만큼 할 수 있는 게 많이 남았고, 성장할 기회가 무한하다는 신호는 마치 정주행 중인 최애 드라마의 시즌이 100개도 더 남았다는 든든한 희소식처럼 보였다.


하지만 평가가 목적이 될 때 만나는 결점은 내 존재의 흠을 발견하는 것처럼 괴로웠다. 차라리 합격 이후의 목적이 뚜렷했다면 나았을까. 일단 시작했다는 이유로 합격만이 목적이었던 나는 내게 더 빠른 속도를 허락해주지 않는 물이 밉고, 더 빨리 달리지 못하는 내 몸과 정신이 싫었다. 애초에 내가 수영하는 이유는 물속에서 빨리 헤엄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인생도 평가가 목적이 될 때 질린다. 부담만 커지고 힘에 부친다. 내 경우 수영 자체가 싫어졌던 것처럼, 삶 자체가 싫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수영은 쉬어도 큰 탈이 없지만 인생은 동면하지 않는 이상 은퇴도 온오프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비교와 평가가 나를 괴롭힐 때, 수단이 목적을 누르고 결과가 과정을 등한시할 때,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우뚝 멈춰 보는 틈새가 필요하다.


그럴 때마다 시초로 돌아가 본다. 나는 왜 수영을 시작했지? 나는 어째서 그토록 수영이 즐거웠지? 물 공포증을 겪은 후로 그저 물에서 두렵지 않고 싶었다. 물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리고 물에서 자유로웠기에 수영이 즐거웠다. 그러나 반대로 강제와 부자유에 빠진 현재를 떠올리 마음이 먹먹다.




수영에 재능은 있지만 만년 4등인 아이가 나오는 영화 <4등>을 봤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엇나간 사랑과 욕심, 폭력의 대물림 등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영화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결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지지와 관심, 그리고 폭력 속에서도 여전히 1등을 하지 못한 아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자유롭게 수영했을 때 나온 결과와 그 결과에 대한 아이의 태도까지. 좋아하는 일과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이든 내가 만족해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한다.


나는 지금 수영을 쉬고 있다. 그러니까 시험과 평가를 위한 수영, 어제보다 더 빠른 수영을 위한 수영을 그만뒀다. 대신 호흡과 자세에 집중하고 나만의 속도로 즐기는 수영은 이어가고 있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물이 들려주는 인생 수업을 재수강한다. '나는 왜 수영을 하는가', 그 질문의 대답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와 닮았다. 수영도 삶도 본연의 순수한 목적을 잃지 않을 때 온전한 의미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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