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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리 Oct 19. 2023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라이프 가드 도전기(3)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축하한다. 거의 다 온 것이다.


“오래 못 돌아서 걱정이에요. 그리고 팔만 쓰는지 팔이 아파요. 특히 삼두가…”

“그럼 발차기 5바퀴 돌고 시작하세요.”


수상 인명구조요원 과정을 앞두고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는 내게 내려온 훈련표는 다음과 같다.


[자유형 발차기 5바퀴 - 전속력으로. 숨 쉴 때도 쉬지 않고 발차기. 편도 30초, 쉼 30초.]

[자유형 인터벌 - 전속력으로 25m, 50% 힘으로 25m 1바퀴. 5바퀴가 1세트]

[시간 줄이기 - 한 바퀴 도는 시간을 5초, 10초씩 점점 줄여가기. 60초라면 다음은 50초.]


“심폐지구력 끌어올리려면 인터벌로 해야 돼요.”


수영장을 도는 동안에는 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얼굴이 열로 뜨끈뜨끈했다. 남일처럼 본 <피지컬 100>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거기에 나온 사람들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갈등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겠지.


‘그동안 내가 한 건 수영이 아니라 물놀이였구나.’


그렇다면 이제 진짜 수영을 해보자. 나는 대부분의 수영장에 있는 끝판왕 강좌, 수영장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보통 마스터반이라고 하는 교정반에 들어갔다. 고수들과 운동량을 채워가니 처음에는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싶다가도 이제 이 만큼이나 할 수 있다! 하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라이프가드 교육 과정에서 또 다른 벽을 만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이어지는 교육은 일주일 과정이었고, 매일 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헤엄치고 사람을 구조하는 법을 배우며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와 동기들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한다고 했을까요?" 하는 한탄을 하며 수강 전으로 돌아가면 시작한다, 안 한다 밸런스 게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수영장에 들어서면 묵묵히 사명을 다해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교육도 시험도 마치고 당당히 라이프 가드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이걸 왜 시작했지?' 누구나 현재의 고생을 초래한 과거의 선택에 의구심을 가져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 힘든 일은 애초에 힘이 필요한 일이었고, 이것을 하기로 선택한 과거의 나도 어느 정도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물론 이 정도까지 벅찰 줄 몰랐을 뿐.


정확한 난이도를 몰랐던 과거의 나는 이것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선택했다. 어쩌면 이만큼 힘들 줄 모르고 선뜻 하기로 마음먹어준 (무지한) 내게 감사할 날이 올지 모른다. 성취를 이루는 모든 일은 어느 정도 힘들고 지지부진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라,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라이프 가드 교육을 듣기 위해 마스터반에서 무한 사이클을 돌 때도, 라이프 가드 수업에서 쉬지 않고 달릴 때도 나는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라고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나 수신인 불명의 외침은 답이 정해져 있었다. 내게 필요하니까. 고통에 낡고 지친 지금의 내가 아니라, 멀쩡한 심신일 때의 내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왜? 해야 하니까. 하고 싶으니까!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성장을 위한 적당한 난도의 과제를 잘 골랐다는 뜻이다. 우리 몸은 낯선 것을 무작정 경계한다. 그러니 마음의 저항이 들만큼 새로운 환경 혹은 강도의 과제라면 우리는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중간에 수영을 포기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멋진 경험들이 너무도 많다.


후회는 순간의 마음이라 그 찰나를 버티면 지나간다. 후회가 언제든 불쑥 내 마음에 방문한다면 냉수 한 잔 내어주고(따뜻한 차는 마시는 데 오래 걸리니까 안 된다) 어서 정신 차리고 떠나게 해줘야 한다. 그렇게 순간의 후회를 보내고 나면 이제부터 어떻게 역경을 헤쳐나갈지 연구할 수 있다.


'이걸 왜 한다고 했지?'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가장 벅찬 순간이 왔다는 신호다. 반대로 말하면 이제는 쉬운 일만 남았다. 대게 그 순간만 넘기면 어려운 건 끝나 있다. 눈에 보이는 환경 자체보다, 내 마음에 의구심이 불어오는 그 순간이 가장 큰 고비인 것이다.


다행인 건 어떤 것도 영원하지 못하고 변한다. 무엇이든 지나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대답해 주자. 이 순간을 위해 한다고 했어. 내 인생에 필요한,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한다고 했지. 이 순간만 지나면 내가 바라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거야. 그러니 반가운 신호를 맞이해 고난의 정상을 지나가자. 낑낑대며 오른 길 너머로 뻗은 아름다운 꽃길에서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을 느껴보자. 나는 물 공포증을 극복하고 가드로 활동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과 힘을 얻었다. 그렇게 헤엄치며 배운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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