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소설 "싯다르타"의 깨달음
안녕하세요, 여러분. 하나의 서재입니다.
오늘은 많은 부모님들께서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요.
회사에서는 나름 인정받고, 친구들 만나면 조언도 해주고, "이제 좀 어른 됐네" 싶을 때가 있잖아요. 사회생활 십수 년 하면서 별일 다 겪었으니까, 웬만한 일에는 "에이, 별거 아니야" 하고 넘길 수 있는 것 같고요.
사람들한테 치이고,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아도 웃어넘기는 여유도 생기고요.
그런데요, 딱 하나. 나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게 있어요. 바로 우리 애들 얘기만 나오면 달라집니다.
다른 건 다 노력하면 되는데, 애들 일만큼은 정말 마음대로 안 됩니다.
여기서 저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는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인생의 진리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원하는 평온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갑자기 나타난 자기 아들 앞에서는 우리와 똑같아집니다. 어쩔 줄 몰라하고, 걱정하고, 집착합니다.
그 이야기를 같이 보면서, 우리도 좀 위로받고 또 배울 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싯다르타』라는 소설, 유명한 작품이지만 간단하게 줄거리부터 말씀드릴게요.
주인공 싯다르타는 인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 엄청 아끼는 외아들이었죠.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잘생기고,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아이였대요.
그런데 이 친구가 어느 날 생각한 거예요.
'이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진짜 행복이 뭔지, 인생의 의미가 뭔지 알고 싶어.'
그래서 집을 나가버려요. 진리를 찾으러요.
처음엔 고행을 해봤어요. 밥도 안 먹고, 물도 거의 안 마시고, 숲 속에서 명상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도 답이 아니더랍니다.
그다음엔 부처님도 만나봤어요. 그 유명한 고타마 붓다요. 설법을 듣고 감동은 했는데, 또 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번엔 정반대로 살아봐요. 세속적인 삶을요. 도시로 가서 장사도 하고, 돈도 벌고, 카말라라는 아름다운 여자도 만나 사랑도 해보고요.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고, 쾌락을 즐기며 살아봤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공허하더래요. '아, 이것도 아니네.'
그러다가 결국 강가에 정착해요. 거기서 바수데바라는 현명한 뱃사공을 만납니다.
그리고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 수십 년을 조용히 살아요. 강물을 보고, 사람들을 강 건너로 태워주고, 명상하고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어느 날 깨달음을 얻게 돼요.
'아,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구나. 모든 것은 하나구나. 고통도 기쁨도 다 의미가 있구나.'
그는 이제 평화롭고, 깨달았고,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게 되었지요.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싯다르타는 갑자기… 아빠가 됩니다. 도시에서 만났던 카말라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녀 옆에는 자신의 아들이 있었죠. 그녀는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되고, 아들을 그에게 맡긴 채 세상을 떠납니다.
싯다르타도 생각했을 거예요.
'나는 인생의 진리를 다 깨달은 사람인데, 아들 하나 키우는 건 문제없겠지?'
그런데 아들은 도시에서 귀족처럼 자랐어요.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하인들한테 시중 받으면서요.
그런데 갑자기 강가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아빠는 뱃사공이고, 매일 명상이나 하고 있고요.
아들 입장에서는 엄청 싫었겠죠?
'이게 뭐야? 나 원래 도시에서 잘 살았는데…'
싯다르타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래서 아들한테 자기가 깨달은 지혜를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게 진짜 행복한 거야. 물질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아. 내면의 평화가 중요해."
그런데 아들은 전혀 듣지 않습니다. 싯다르타는 점점 힘들어집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아들은 더 멀어지고, 더 반항하고, 더 화내고…
그러다가 어느 날, 아들이 그냥 도망가버립니다.
싯다르타는 그때 완전히 무너져요.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혹시 나쁜 일 당하는 건 아닐까?'
우리 이야기 같지 않나요?
아무리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기 아이 앞에서는 그냥 걱정 많은 부모일 뿐입니다.
싯다르타가 아들한테 집착했던 이유는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이게 진짜 아이러니예요.
사랑하니까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니까 아이가 더 밀어내고, 아이가 밀어내니까 우리는 더 붙잡으려 하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엄마, 저도 제 생각이 있단 말이에요."
"제 인생인데 왜 부모님이 다 정해요?"
우리는 무의식 중에 아이를 '내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낳았고, 내가 키웠으니까 당연히 내 것이라는 생각이 은근히 깔려 있는 거겠죠.
하지만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독립된 사람입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한 명의 인간인 거죠.
칼릴 지브란이라는 유명한 시인이 『아이들에 대하여』라는 시를 썼어요.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아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 그 자체의 그리움으로 태어난 아들딸입니다."
아이는 나를 '통해서' 왔지만, 나'에게서' 온 게 아니에요.
아이는 나와 함께 있지만, 내 소유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우리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의 몸은 우리 품에 있을 수 있지만, 아이의 영혼은 이미 우리가 갈 수 없는 내일의 땅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싯다르타의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아들이 떠나고 나서 싯다르타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아이를 찾아서 데려와야지.'
'아이가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
'혹시 다친 건 아닐까?'
'밥은 먹고 다닐까?'
이 장면… 진짜 우리 모습 같습니다.
그때 바수데바가 옆에 와서 조용히 앉아요.
뭐라고 위로하거나 설교하지 않아요. 그냥 같이 강물을 함께 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강의 소리를 들어보게. 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네.”
“강은 우리에게 하나를 가르쳐 준다네.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야.”
싯다르타는 오랫동안 강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강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해요.
산꼭대기에서 시작된 작은 물방울이 계곡을 따라 내려와요.
가다가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폭포를 만나면 떨어지고, 때로는 흙탕물이 되기도 하죠.
가뭄이 오면 졸졸졸 가늘어지고, 장마가 오면 콸콸콸 거세게 흐르고요.
그런데 강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릅니다.
그렇게 계속 흘러가다 보면 결국 바다에 닿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배웁니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걸.
진정한 사랑은 붙잡는 게 아니라 놓아주는 거라는 걸.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동시에 깨닫습니다.
사랑하니까 걱정되고, 걱정되니까 붙잡고 싶고, 그래서 놓아주는 게 진짜 힘든 거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놓아줘야 합니다.
그게 진짜로 아이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오늘 밤에도 우리는 아이 걱정하면서 잠 못 이룰 거고, 내일도 또 아이한테 잔소리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진심이었다면, 모든 건 결국 괜찮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아닙니다. 실수도 하고, 때로는 아이에게 상처도 줍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집착을 조금 내려놓고, 믿음을 채워보면 어떨까요?
*이 글은 제 유튜브 채널 '하나의 서재'에 올린 영상 대본을 브런치 독자님들을 위해 글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유튜브 영상에서는 소설 싯다르타 속 이미지를 영상화하였습니다. 따뜻한 저의 목소리로 더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 들려드립니다. ^^
유튜브 영상링크 https://youtu.be/FU_3EOgGWf8?si=SrTD7s2e6mFBes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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