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불행했던 진짜 이유

소설 "백 년의 고독"에서 발견한 해법

by 연하나

여러분, 혹시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워서 스트레스 주는 관계를 억지로 붙들고 계신가요? 어딜 가도 사람들과 무리 지어야 하고, 긴 연휴기간이라도 생기면 불필요한 약속을 만들며 애써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연락을 이어가고 계시진 않으신지요. 하지만 그런 피상적인 관계들 속에서 진정한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홀로 자립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이지 않을까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실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 고요한 시간을 생애 처음으로 뜨겁게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저는 그 해답을 60년 전 콜롬비아 작가가 쓴 한 소설을 통해 찾아보았습니다.

지금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을 함께 읽어봅시다.



『백 년의 고독』은 콜롬비아의 한 가상 마을 마콘도에서 부엔디아 가문 7대에 걸친 100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아내 우르술라가 근친혼의 저주를 피해 마콘도라는 마을을 세우면서 시작됩니다. 호세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발명에 몰두하지만, 점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결국 미쳐버리고, 밤나무에 묶여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32번의 전쟁에 휘말리고, 17명의 사생아를 낳지만 모두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권력도, 명예도, 사랑도 잃어버립니다. 그는 결국 작은 방에서 황금 물고기를 만들고 녹이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이 가문은 대를 이어 같은 이름들을 지어 붙이듯 , 같은 운명이 반복됩니다.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사는 것보다 익숙함을 선택하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아있지요. 그 가문의 사람들은 저주가 내려진 듯 조금 다를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같은 불행을 겪게 됩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비극적인 죽음, 끝없는 불운이 이어집니다.


부엔디아 가문의 여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과 싸웁니다. 마콘도를 세운 호세 아르카디오의 아내 우르술라는 100년이 넘도록 가문을 지키려 애쓰지만, 결국 모든 것이 반복됨을 깨닫고 절망합니다.

이 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독의 본질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 사랑의 결핍을 충족시키려 잘 못된 관계를 맺지 말라.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즉흥적으로 사랑의 결핍을 채우려 합니다. 순간의 열정에 휩싸여 충동적인 행동도 합니다.

우르술라는 100년 넘게 살며 가문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녀들에게는 진정한 애정을 주지 못했습니다. 집안 살림에, 돈 관리에, 가문의 체면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애정 결핍을 느낍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결핍을 채우려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채웁니다.

부엔디아 가문의 자녀들은 근친 관계에 가까운 관계임에도 사랑을 하고 결핍을 해소하려 합니다. 고립된 마콘도라는 공간에서, 고립된 관계 안에서만 사랑을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 없이, 충동적으로 욕망만 채우려 하면, 우리는 더욱 깊은 고독에 빠집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이 고독을 해결해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착각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라고요.

하지만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끊임없이 사랑했습니다. 열정적으로 사랑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랑도 그들의 고독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우르슬라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17명의 여자와 관계를 맺었지만, 평생 외로웠습니다.

그녀의 딸 아마란따는 여러 남자의 청혼을 받았지만, 결국 혼자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사랑은 고독의 해답이 아닙니다. 사랑은 고독을 잠시 잊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잘못된 관계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고립시킵니다. 더 외롭게 만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독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고독을 제대로 수용해야 합니다.


부엔디아 가문의 비극은 고독해진 것 자체가 아닙니다.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잘못된 방식으로 채우려 했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 우리는 급하게 누군가를 붙잡으려 합니다. 잘못된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달립니다.

하지만 진정한 해답은 그 고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실제적인 행동이었고, 젊음의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었던 전쟁이 이제는 막연한 개념, 다시 말하면, 공허한 그 무엇으로 변모되어 버렸던 것이다."


우리가 젊었을 때 열정적으로 쫓아갔던 것들—성공, 인정,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인간관계—이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40대만 넘어가도,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아, 내 주변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구나."

친구들의 연락이 뜸해집니다. 모임이 점점 줄어듭니다.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퇴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관계가 협소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니, 오히려 필요한 과정입니다.

젊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맥이 넓어야 하고, 친구가 많아야 하고, 항상 누군가와 연락하고 지내야 한다고요.

하지만 그 많은 관계들 중에서 진짜 내 편은 몇 명이었습니까?

정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몇 명이었습니까?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정작 휴대폰 속 연락처 속 누구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까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대부분의 관계는 피상적입니다. 이해관계로 얽힌 것들입니다.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계는 없었나 생각해 봅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지요.

더 나이가 들면, 그런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이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오히려 축복이지 않을까요?

이제 여러분은 의미 없는 관계에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돼요. 억지로 웃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맞장구쳐 줄 필요도, 남들 비위 맞춰주느라 입맛에 맞지 않는 메뉴를 먹을 필요도 없지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함께 있으면 어느 정도는 불편합니다.

완벽한 관계는 없는 것 같아요. 완벽한 가족도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랑도, 결국 고독을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고독은 일종의 권력입니다.

권력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힘입니다.

고독할 수 있다는 것,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있지 못합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외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관계에 매달립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에게서도 떠나지 못합니다. 의미 없는 모임에도 억지로 나갑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혼자 있을 수 있다면?

여러분이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때 여러분은 진정한 자유를 얻습니다. 진정한 을 얻습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습니다.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외로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권력입니다.

책 속의 아우렐리아노 대령을 다시 보십시오.

그는 32번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수천 명의 부하를 거느렸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공허했습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는 가장 외로웠습니다. 진정한 힘이 없었습니다. 거듭되는 전쟁 속에 모든 것이 공허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혼자서 황금 물고기를 만들고, 다시 녹이고, 또 만듭니다. 팔려고 만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의미해 보이나요?

아닙니다.

이처럼 명상과도 같은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가졌을 겁니다.

누군가의 명령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기대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평가도 없습니다.

오직 나와의 대화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독의 권력입니다.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진정 혼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구원의 시간을 얻을 수 있지요.

우리 인간은 잘못된 관계임을 알면서도 계속 엮입니다. 왜일까요? 혼자 임이 두렵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반복되어 저주처럼 불행의 서사를 씁니다. 부엔디아 가문처럼요.

하지만 우리는 다를 수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성장합니다.

혼자 있을 때 진짜 나를 만납니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 하루,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핸드폰도 꺼두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요.

그 시간이 여러분을 구원할 거예요. 그 시간이 여러분을 성장하게 할 거예요.

『백 년의 고독』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혼자 있을 때 찾아온다는 것.

진정한 힘은 고독을 받아들일 때 생긴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성장은 혼자 있을 때 일어난다는 것을요.

여러분의 고독을 껴안으세요.

그 안에서 여러분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제 유튜브 채널 '하나의 서재'에 올린 영상 대본을 브런치 독자님들을 위해 글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아래 링크를 따라가시면 소설 "백 년의 고독"을 다채로운 캐릭터의 이미지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쑥스럽지만, 저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하여 들려드립니다. ^^


유튜브 영상링크 https://youtu.be/G31SqEUyWwA?si=hVJ9a-S0PU2Rz_-_


마음을 채우는 가장 우아한 방법, '하나의 서재'구독, 부탁드려요.
매주 인문학적 통찰을 나눠드립니다.
당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줄 거예요.


제목을 입력해주세요. (35).jpg



목요일 연재
이전 02화제발, 당신의 아이를 놓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