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인간을 부속품으로 만들 때

영화『어쩔 수 없다』 원작 소설 『엑스』리뷰

by 연하나


"이제 더는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한 마디가 끝입니다.

어제까지 당신이 회의실에서, 작업 현장에서, 그 어딘가에서 쏟아낸 수년의 시간이… 그냥 끝납니다.


오늘 소개할 소설의 주인공 버크.

그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저는 그를 무조건 괴물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어요.

오늘은 그 이유를 함께 이야기해 볼게요.


오늘 소개할 책은 드라마 「어쩔 수 없다」의 원작 소설 "엑스"입니다.


도끼(Axe). 영어로 엑스. 그리고 해고(사람을 자르다)라는 뜻도 담긴 이 단어 하나가 소설 전체의 무게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1990년대 후반 미국입니다.

당시 미국 제지 산업은 인건비가 저렴한 캐나다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었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우리나라도 2000년대 이후 제조업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가는 걸 경험했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AI가 사람의 자리를 하나씩 가져가고 있습니다.

30년 전 미국 이야기가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입니다.

버크는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고, 매달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던 사람.

그가 실직을 당합니다. 그리고 새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합니다. 살해하면서요.


처음엔 양심이 무너지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을 이렇게 정의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무자비한 시스템의 희생자다."

"이건 전쟁이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자기 정당화의 논리가 얼마나 섬뜩하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 읽으면서 자꾸 멈추게 됩니다.

이 사람이 틀렸다고 말하면서도, 왜 이해가 될까요.


아내는 긴축 생활을 선택합니다. 씀씀이를 줄이고, 현실을 직시하며, 남편과 같은 자리에서 함께 헤쳐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남편과 점점 단절되어 갑니다. 말이 없어지고, 눈이 멀어집니다.

아내는 그 안에서 혼자 고독을 느낍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자책을.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 사이의 거리가 소리 없이 멀어지는 거라는 걸 이 인물이 보여줍니다.


아들 빌리는 자신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살 돈이 없자, 절도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들키지 않으려 거짓말을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작가는 이 아이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 그 논리가 세대를 넘어 전염된다는 것.

가장 무서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소설 제목처럼, 해고는 도끼질입니다.

나무를 베는 것처럼 단호하고, 빠르고, 일방적입니다.

그 도끼를 드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시스템입니다.


효율성. 생산성. 비용 절감.

이 세 단어 앞에 서면, 사람은 그냥 숫자가 됩니다.

충분히 효율적이지 않으면? 교체됩니다. AI로, 혹은 더 저렴한 노동력으로.

소설은 여기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수천 명을 해고 결정한 줄로 해고하는 경영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시스템.

그것이 버크와 본질적으로 다른가요?

버크는 손에 피를 묻혔습니다. 시스템은 서명한 줄로 같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고효율을 추구하는 논리, 저도 이해합니다. 기업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도 압니다.


사람을 효율성의 관점으로만 보는 순간, 우리 모두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부속품이 됩니다.

지금도 수많은 버크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이 실직 후 오랜 시간 방황하고 계십니다.

버크처럼 스스로를 '평화롭던 시절'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느끼면서요.

그 상실감이 얼마나 사람을 무너뜨리는지, 이 소설은 아주 잘 보여줍니다.


작가가 묻습니다. 그리고 저도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빠르게, 그렇게 많이, 그렇게 효율적으로 살아야 할까요?

조금 느리고, 조금 덜 풍요로워도, 서로를 부속품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는 사회.

버크는 운 좋게도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리고 소설은 그가 원하던 회사의 인터뷰를 앞둔 채 끝납니다.

해피엔딩일까요? 저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가 된 사람도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여러분은 버크가 이해가 되시나요?

그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의 행동을 옳다고 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해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우리 사회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요.


*이 글은 제 유튜브 채널 '하나의 서재'에 올린 영상 대본을 브런치 독자님들을 위해 글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아래 링크를 따라가시면 책 "엑스" 다채로운 캐릭터의 이미지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쑥스럽지만, 저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하여 들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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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링크 -> 소설 엑스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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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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