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5월 KBS1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했다. 게다가 우승까지 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사람들은 내가 우리말에 아주 관심이 많거나, 우리말을 잘하는 줄 안다. 하지만 나의 출연 동기는 우리말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공중파 TV에서 샤이니 태민이에게 영상 편지 보내기’
출연 당시에 샤이니 태민의 17년 차 팬이었던 나는 언젠가 방송에 나가서 태민이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방송에서 영상 편지를 한다는 게 너무 낭만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험 준비하듯 우리말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왕이면 우승을 해서 영상 편지가 빛났으면 했다.
녹화도중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샤이니의 음악을 듣고 팬사인회에 가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대답했다. 아, 이때 태민이에게 영상편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재빨리 손을 들고 말했다. “저 태민이에게 영상편지 해도 될까요?” 기회를 얻은 나는 우리말 공부보다 더 열심히 준비한 영상편지 내용을 줄줄이 말했다.
“태민아 사랑해”
영상편지를 마무리 하며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든 내 모습이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방송 후에 내 사랑고백 짤을 만들어 트위터에 올려 태민이가 보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른 팬들이 재게시를 하는 리트윗수가 높아질 때마다 태민이가 볼 가능성이 커질것 같아 기대했다. 나중에 팬사인회 가게되면 방송을 봤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6년, 나는 태민이의 19년 차 팬이 되었다. 처음 태민이의 팬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19년이라니. 아직도 2008년 5월의 태민이가 기억에 생생한데. 까만 바가지 머리로 춤을 추던 중학교 3학년의 태민. 나는 그를 처음 보았던 순간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그날, 나는 태민이에게 첫눈에 반했다.
2008년 5월, 그날은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와 인터넷을 하며 쉬고 있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아주 편한 자세로 앉아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게시판 제목들을 훑어보다가 '샤이니 누난 너무 예뻐 뮤직비디오 티저'라는 문구에 시선이 멈췄다. "노래 제목이 '누난 너무 예뻐'가 뭐야?" 투덜거리면서도 손가락은 이미 게시물을 클릭하고 있었다.
처음 티저를 보고 난 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달아 몇 번이나 15초 짜리 티저 영상을 돌려보았다. 영상 속 까만 바가지 머리 멤버가 충격적으로 잘생긴 데다 춤을 잘 춰서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처음 본 순간 되감기를 해서 얼굴을 몇번이고 다시봤다. 댕댕 귀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앳돼 보이지만 내 이상형에 100% 일치하는 얼굴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아이의 이름은 태민, 나이는 16살, 중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26살이었던 나는 태민이의 나이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리다니. '누나'라고 부르기엔 양심이 찔리는, '이모'의 경계에 서 있는 나이는 아닐까 고민에 빠졌다. 열살이나 어린 저 아이를 좋아해도 될까? 이런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이미 자연스럽게 태민이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날은 샤이니의 데뷔일인 5월 25일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나는 샤이니의 첫 데뷔무대를 찾아 가볼까 생각 했지만 음악 방송에 가기엔 나이가 많아서 포기했다-이 일은 내가 19년이라는 긴 덕질의 시간 중 지금까지도 뼈저리게 후회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리고 방송으로 데뷔 무대를 보았는데 땀으로 머리가 다 젖은 채 무대를 하는 태민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나는 샤이니의, 태민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샤이니를 보러 처음으로 인기가요에 갔다. 그날은 〈Run It〉 커버 댄스와 〈누난 너무 예뻐〉(이하 누너예) 사전녹화(이하 사녹)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런잇 사녹 무대를 기다리며 태민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상상했다. 오늘도 바가지머리에 귀여운 모습일까? 아니면 다른 모습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드디어 태민이가 등장했다.
검은색 가죽 상.하의를 입고 센터에서 춤을 추는 태민이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춤추는 태민이의 포스가 너무 강렬해서 눈이 계속 갔다. 누너예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의 태민이를 처음 봐서인지 무대가 끝난 다음에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미쳤다.... 대박 멋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무대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너예 태민이도 좋았지만 런잇 태민이의 새로운 모습이 유독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누난 너무 예뻐> 속 태민이 나를 입덕하게 만들었다면, <Run It> 속 태민의 춤은 출구를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훗날 이 소년이 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함께할 거대한 이정표가 될 줄은,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