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by 송이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캐나다 밴쿠버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연수 준비를 하면서 홈스테이 가정에서 머물 건지 학원 기숙사에서 살 건지 결정해야 했는데 나는 홈스테이를 하고 싶었다. 외국인 가족과 함께 살면서 영어 공부를 하는 로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홈스테이는 복불복이라 좋은 가족이 걸릴 수도 있고 이상한 사람들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해서 망설여졌다. 그래서 나는 학원 기숙사로 숙소를 정했다.


하지만 나는 학원 기숙사에서 한 달 만에 홈스테이로 이사를 갔다. 학원에서 공용주방을 썼는데 냉장고에 넣어둔 내 물건- 소분해서 얼려놓은 밥, 통에 이름을 크게 써 놓은 김치 등이 자꾸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싼 김치 훔쳐 가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냉동 밥 훔쳐 가는 거는 정말이지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홈스테이로 옮기기 위해 몇 군데 가정을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캐네디언 부부가 사는 집에 방문했는데 노부부의 인상부터 너무 좋았다. 아담한 이층 집도 정말 예뻤고 특히 내가 쓸 방은 1층의 반이나 됐다. 넓은 방에 침대, 책상, 옷장, 소파, 커피 테이블, 티비장까지 있었다. 제일 좋았던 거는 화장실을 나 혼자 쓰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맘에 든 나는 이곳에 머물고 싶었고 며칠 뒤 좁은 학원 기숙사 방을 떠나 널찍한 홈스테이 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노부부와 한국인 중학생 한 명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의 새 식구가 된 나는 저녁 식사를 항상 넷이 함께 했다. 주인 부부의 음식 솜씨가 좋아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주말 점심은 내가 챙겨 먹었어야 했는데 나는 한국인 동생과 함께 김치볶음밥이나 떡볶이를 해 먹기도 했다. 1년 반 전에 이 집으로 왔다는 그 중학생 아이는 부부의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내가 같은 한국인이고 같이 음식도 해 먹고 사이좋게 잘 지내니 부부가 굉장히 좋아하셨다. 우리 넷은 금방 친해졌고 넷이 외식도 자주 하러 가고 주말에는 외곽으로 놀러 나가기도 했다.


1층의 반을 차지하는 큰 방은 아줌마가 이틀에 한 번 청소를 해주셨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돈을 지불했으니, 본인이 청소를 해주셔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 엄마보다도 나이 많으신 분이 내 방 청소를 해주는 건 정말 너무 부담스러웠고 정중하게 말씀드리자, 아줌마는 대신 도시락에 더 신경을 써주시겠다고 했다. 그 뒤 내 방과 내 화장실 청소는 내가 스스로 했고 아줌마는 도시락과 저녁 메뉴에 더 신경을 써주셨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줌마는 항상 2층 데크에서 신문을 읽고 계셨다. 나는 숙제 거리를 들고 올라가서 아줌마 옆에서 숙제하며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물어보곤 했다. 가끔은 아줌마가 읽던 신문 기사가 좋다며 읽어보라고 주셨고 모르는 단어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차츰 아줌마와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영어가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5개월쯤 홈스테이를 했을 때 같이 지내던 한국 중학생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집에서 나와 부부만 지내게 됐는데 나 혼자 있으니 아줌마 아저씨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셋이 외식도 하고 가끔은 아줌마랑 둘이 쇼핑도 하러 갔다. 추수감사절에 부부는 지인을 초대했는데 그 부부에게 나를 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돌아가지 말고 계속 밴쿠버에서 같이 살자고 하셨다. 나는 방을 빌려 사는 홈스테이 학생일 뿐이었지만 마치 그 집의 진짜 딸이 된 것 같았다.


나도 계속 밴쿠버에서 공부하며 살고 싶었지만 9개월의 연수를 마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8개월 동안 한집에 살며 정든 부부와 이별하려니 형용할 수 없는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이제 헤어지면 다시 볼 수 있으려나. 내가 귀국하던 날 공항에서 우리 셋은 아쉬움에 펑펑 울었다. 나를 다정히 안아주시며 등을 토닥여 주시던 아저씨의 너른 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아줌마에게 자주 이메일을 보냈다. 아줌마는 홈스테이 후에 이메일을 보내고 연락하는 학생은 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인연은 10년이나 이어졌고 나는 밴쿠버에 갔다 온 지 10년 만에 아줌마를 만나러 캐나다로 갔다. 내가 9월에 갔는데 안타깝게도 아저씨는 그해 2월에 돌아가셨다. 아저씨도 만나 뵙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밴쿠버에 8일 동안 있었는데 나는 홈스테이를 했던 그 집에서 아줌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줌마는 숙박비도 받지 않았고 내가 연수 시절 즐겨 먹었던 여러 가지 음식을 해주셨다. 아줌마와 근교로 여행도 다녀왔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우리는 또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고 3년 뒤 나는 다시 밴쿠버로 향했다.


나는 단지 그분들의 집에서 방을 빌려 살러 갔을 뿐인데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자식이 없던 그분들은 나를 딸처럼 아껴주셨고 나는 또 다른 부모님이 생긴 것 같았다. 언제나 나와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자신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 들이었다고 말씀해 주시는 다이엔 아줌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줌마가 너무 보고 싶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줌마에게 보고 싶다고 메일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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