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무게

by 송이

회사 비서실에서 13년을 일하던 중 민원실로 발령이 났다. 부서이동이 있을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발령이 난 턱에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민원실 중에서도 가족관계등록팀으로 발령이 났다. 가족관계증명서등 증명서 발급도 하고 사망신고, 혼인신고도 받고 하는 자리였다. 나는 목요일에 발령 사실을 알았고 월요일부터 민원실로 출근해야 했다. 목요일 오후부터 나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민원대에 앉아 제증명 발급을 해야 한다는 말에 너무 걱정되고 또 걱정이 되었다.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일을 갑자기 해야 한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주말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 걱정이 되고 출근하기 싫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지옥 같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민원실로 출근을 했다. 첫날은 전임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인수인계받았다. 인수인계는 30분 만에 끝났다. 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전임자는 법령 찾아보시고 모르시면 전화하세요라고 말하고 가버렸다. 야속하고 서운했지만 어쩔 길이 없었다. 다행히 내 옆자리 직원은 그 자리에 1년 넘게 있었다는데 내가 눈치 보다 질문을 하면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제증명 발급에 필요한 각종 권한을 신청하고 전임자가 남긴 제증명 발급 매뉴얼을 보다 퇴근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증명서 발급에 필요한 권한이 모두 승인된 다음날 아침 나는 민원실에 들어서는 우리 엄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출근 전에만 해도 시청에 온다는 말이 없던 엄마가 아홉 시도 안 됐는데 갑자기 민원실에 들어오셔서 1번 번호표를 뽑으신 것이었다. 엄마는 아홉 시 되면 천천히 불러달라고 하시며 민원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하셨다. 엄마가 어제 지나가는 말로 너한테 가족관계증명서 받으러 가야겠다고 하셨는데 진짜 오실 줄은 몰랐다.


띵동! 하고 호출벨을 누르고 엄마가 내 앞 의자에 앉으셨다.


”가족관계증명서 한 통 부탁드립니다. “


엄마는 싱긋 웃으시고는 내게 존댓말을 하시며 신분증을 내미셨다. 나는 엄마의 신분증을 받아 들고 가족관계증명서 떼는 순서를 속으로 천천히 복기한 뒤 증명서를 떼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증명서를 넘겨 드리기 전 잘못된 곳이 없나 증명서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발급자란에 찍힌 내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천원 결제해 드릴게요. “


내 손으로 발급한 엄마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엄마에게 드리며 수수료 천 원을 받았다. 엄마는 내가 내민 증명서를 받아 드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감사합니다. 혹시 이거 봉투에 담아주실 수 있나요?"

”네. 넣어드릴게요. “


대 봉투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넣어드리고 엄마는 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엄마가 나가신 뒤 다른 민원인을 응대하느라 잠시 바빴다. 한참 뒤에 잠깐 시간이 나서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엄마에게 사진 한 장과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내가 발급해 드린 가족관계증명서에 쓰여있는 발급자 내 이름과 신청인 엄마 이름이 함께 나와 있는 사진이었다.


사랑하는 내 딸이 발급해 준 증명서에 네 이름이 쓰여있는 걸 보고 엄마는 얼마나 행복하고 마음이 뭉클했는지 모른단다. 네가 직접 발급해 주는 증명서를 처음으로 받고 싶어서 몰래 시청에 갔는데 깜짝 놀랐지? 엄마는 오늘 네가 발급해 준 증명서를 소중하게 간직할 거야.

딸아. 발급자란에 네 이름이 쓰여 있다. 이 이름의 무게를 너는 아직 모르겠지. 비록 1g도 안 되는 가벼운 증명서지만 거기에 써 있는 네 이름에 책임감이 더해져서 이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증명서가 되었단다. 너는 이제 네 이름의 무게를 항상 생각하며 민원인을 응대하고 증명서 발급에 신중을 가하길 바란다. 항상 자신 말과 행동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훌륭한 직원이 되길 바란다. 사랑하는 내 딸 파이팅!


나는 엄마의 메시지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져서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훔치고 나왔다. 내가 발급한 증명서가 갖고 싶어서 일등으로 달려오신 엄마의 사랑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증명서에 발급자 이름이 나오는 걸 보니 내 업무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잘 모르고 봤을 때는 쉬워만 보였던 민원대 업무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이 실감 났다. 이제 내가 발급한 증명서에는 내 이름의 무게가 더해진다. 증명서를 잘 발급해도 또 오발급 해도 모두 내 책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민원인을 대하고 증명서를 발급할 때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니만큼 더 친절하고 신중하게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제20회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에서 동상을 수상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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