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주는 마음

그 사소한 기쁨

by 호시절


유난히 맛있었던 점심을 양껏 먹은 후, 볼록 나온 배를 보곤 조금의 죄책감을 덜고자 직장 동료들과 산책을 했다. 근무지 내에는 작은 텃밭이 하나 있는데, 문득 보면 작아 보여도 꽤나 실한 작물들이 숨죽여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텃밭을 담당하는 분께서 오전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혹시 가지, 상추, 방울토마토, 살구 등을 좋아하시는 분께서는 텃밭에 있는 작물들을 가져가셔도 됩니다. 열매가 많이 맺혀 식물들이 힘들어하고 있네요.'


금방이라도 작물을 수확하고 싶어 지는 욕구를 일으키는 메시지였다. 점심시간 즈음에야 나간 우리는 한바탕 작물 서리를 당한 밭을 훑어보곤,


"에이~ 다 따갔네. 많이 없어~."


라고 푸념 섞인 말을 내뱉었다. 토마토는 새파란 것들만 남았고, 가지는 수확하기엔 조금 어려 보이는 아기 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와중


"오 여기 좀 큰 거 있네요."


하면서 손바닥보다는 좀 더 큰 매끈한 가지를 따주시는 맏언니. 기대를 잔뜩 품은 채 산책을 나갔던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덥석 내게 실한 가지 한 개를 쥐어주었다. 가지의 표면은 매끈하고 빛이 났으며, 선명한 선의의 모습을 지녔다.


"어휴~ 전 괜찮아요. 다른 분 가져가세요."


한국인은 원래 한 두 번은 거절해야 하는 것이라, 가지가 윤택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을 보니 내심 욕심이 났지만,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누군가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후 동료 직원들이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가지들을 내게 연달아 쥐어주더니,


"양이 많지도 않은데, 그거 볶으면 얼마 안 되는 건 알고 있나? 그냥 자기 다 가져가~"


"몰아주기야 몰아주기"


라고 나직이 말하셨다. 내 손에 쌓인 보랏빛 가지만 대여섯 개. 그러다 둘러보니 한 분은 저쪽에서 상추를 뜯고 계신다. 그 동작과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 주말 농장 주인이야. 상추 따기 달인~"


그리고 상추도 나에게 쥐어주셨다.


"오늘은 호시절 생일인가?!"


나는 졸지에 오늘 생일인 사람이 되었다. 가지 대여섯 개와 손바닥 위로 수북이 쌓인, 아직 흙먼지가 덜 걷힌 상추를 바라보며, 조금 울컥했다. 예전에 친구들과 얼굴 몰아주기를 하며 셀카를 찍던 느낌이랑은 다른 느낌의 몰아주긴데... 심신이 피곤했던 일상에 끼여있다가 잠시 숨통을 트인 느낌에 더해, '이게 사람사는 맛이지'라는 애늙은이 소리를 마음 속으로 외쳤다.


퇴근 후 한 손이 무거웠다. 몰아주는 마음이 쌓이고 쌓여 비록 손에는 묵직한 느낌을 가져다주었지만, 나는 오늘 잠깐이나마 행복의 질감을 여실히 느꼈으리라. 그렇게 확신했다.

작가의 이전글문학은 왜 읽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