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해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때라서 02

경알못의 짧은 생각

by 호시절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에는 주로 걷는다. 그런 순간은 참 다양한데, 어떨 때는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시작되어 하루 내내 나를 침잠하게 하며, 어떨 때는 하루의 끝자락에 그 순간이 찾아와 일상의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일정 시간을 걷는 행위,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작은 미션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도시의 낯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의 낯빛도 살펴보며. 묘한 안도감과 소박한 성취감은 덤으로 따라온다. 어딜 그렇게 향하느냐 묻는다면, 주로 ‘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날은 특히 봄 느낌이 물씬 나는 주말이어서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점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참, 아직 2월이었지. 입구를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책이라는 물성의 공간에 비로소 입장하게 된다.


내가 자주 가는 서점에선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자기 계발’과 ‘경제/경영’ 코너를 마주할 수 있다. 사실 20대 초중반에는 ‘좋아하는 것들’에 푹 빠져 있어서, 그곳을 잘 쳐다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하면, 주로 누군가의 지난한 삶을 길고 아름답게 늘여놓은 문장들, 혹은 현실보다 더 사실적인 이야기,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과 심리를 반짝이는 언어들로 정제해놓은 것 등을 말한다. 그때의 나는 아마 ‘어리다’는 핑계로 부모님의 둥지에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 채 세상 바깥 너머의 것들을 관조하는 새와 같았달까.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성정이 삶의 태도에 그대로 반영된 때라서, 삶을 조금은 낭비해도 괜찮다는 에세이에 위안을 받으며 그렇게 흘러가는 듯이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의문과 함께, 그간 아름다운 것들만 찾으며 안일하게 살아온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취향과 가치를 이야기했던 많은 대화들이 어느샌가 돈과 걱정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끼곤, 이제는 외면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에 하루빨리 관심을 돌려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자라나고 있었다. 요즘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에는 ‘주식, 부동산, 육아, 돈’ 등 현실적인 삶의 면면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친구는 푸념 섞인 목소리로


“진짜 나이 들어갈수록 너무 버겁다. 이제는 재테크도 잘해야 하나봐~.”


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 짧은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무게가 실려있는가. 앞선 말을 했던 친구는 불과 2년 전부터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이번에 갭투자를 하여 7억짜리 집을 샀다. 올해 1년 목표가 서울의 모든 구를 임장 하는 것이라니. 참 똑똑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무척이나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이런 모습이 낯설지는 않다. 직장 후배들은 아직 서른이 되기도 전에 주식과 부동산 공부에 열심이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투자의 중요성을 깨닫고 행동에 옮기고 있다. 고등학교에 주식 동아리가 있다니, ‘라떼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찍부터 경제의 흐름을 알고, 돈의 중요성을 알아야 가난을 피할 수 있다는 지극히 타당한 명제. 경제적인 수준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요즘같이 금리가 낮은 때에는 뭐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는 구호에 맞춰 나 또한 작년부터 주식 계좌를 열고,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소설과 에세이, 시, 인문학 서적으로 가득했던 나의 책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투자와 부동산 관련 책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그것에 할애하는 시간들을 위해 체력과 시간이라는 자원을 조금씩 분배하고 있다.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경제서적을 펼쳐보며 이 낯선 세계의 용어들과 메세지가 종종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알면 알수록 ‘나는 참 무지했구나’ 반성하기도 하고, 과거에 유유자적히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미리 이러한 것들을 알고 실천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과 새로운 것들을 학습해가는 과정은 흥미롭기도 하다.


이런저런 경제서들을 기웃거리다 다음과 같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일 수 있다). 기존에 보던 에세이나 소설, 인문학에서는 ‘돈’보다는 우리가 지켜야 할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질에 얽매이는 삶을 지양하고, 내가 가진 틀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 혹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것을 언급한다. 타인과의 비교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 중 하나이고, 삶을 조금은 느긋하게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반면, 자기 계발 혹은 경제/경영서들은 ‘물질이 중요하지 않다’ 혹은 ‘돈은 나쁜 것이다’와 같은 분위기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이 돈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물질에 지배당하지 않고 주도권을 가지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기에, 조금 더 일찍부터 이러한 시장 논리를 알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아직은 나를 채찍질하고, 부자가 되기 위한 길과 같은 글보다 마음을 건드리는 언어, 지켜야 할 가치들에 대해 논하는 글에 더 끌리는 것을 보니 ‘부자가 되기에는 글러먹었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음날 아침에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나는 참 모순적이기도 하다. 아직은 의무적인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어서일까. 다만, 이 복잡한 세계에서 무엇을 추구하든 타인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나아가는 삶이라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비난할 권리는 없다(나는 일전에 문학을 읽는 사람을 괄시하는 어떤 사람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천천히 나아가는 삶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도 의미가 있으니,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어떻게 보면 서로 대척점에 있는 책들을 접하면서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결국 ‘역시 균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라는 어설픈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오늘은 서점의 어떤 코너를 먼저 둘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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