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는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깔딱 고개를 넘는다. 지팡이 두 개를 양 손에 쥐고 네 발 동물처럼 산을 탄다. 오늘 내가 걷는 길은 능선재다. 굽잇길이 멋지다. 흙길 위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켜켜이 쌓인다. 능선을 따라서 오르면 눈 아래 세상이 가득하고, 내려오면 잎을 떨군 가지들이 걸어가는 길마다 나를 반긴다. 그 사이로 불어오는 산바람을 타고 능선을 오르내린다.
새해가 되면서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정했다. 그리고 타임캡슐에 넣어 지인의 마당에 묻었다. 그중 하나가 한 달에 두 번 산행하기다. 혼자여도 좋다. 묵묵히 산을 오르다 보면 마음은 무엇으로든 가득 차고 복잡한 머릿속은 가벼워진다.
내게 산은, 능력자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픔을 간직한 채 산을 찾는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 주는 그 넓은 품이 산을 타는 동안 나를 해체하고 결합한다. 힘들면 멈추었다가 다시 오른다. 땀으로 젖은 몸이 산바람에 한 번 씻기어 마르고 나면 몸은 그때부터 한량없이 기쁘고 가볍다. 내려오면 나는 살아갈 힘을 얻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작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운부암 산행을 했다. 운부암은 은해사를 지나 한참을 오르면 만나는 작은 암자다. 은해사 가는 길은 늘 사람이 북적이지만, 운부암으로 향하는 길은 인적이 드물다. 망자의 혼을 달래는 작은 암자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입구의 불이문이 눈에 띈 것도 그즈음이었다.
산정에 오르기까지 함께 하는 계곡의 물은 쉼 없이 아래로 흐르며 다슬기와 물고기를 키운다. 바위를 뚫고 나온 나무와 바위에 기생하는 뿌리를 살게 한다. 하늘을 향해 몸피를 늘린 나무들의 가지마다 초록의 잎이 무성할 때면 걸어가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생장하는 그들을 올려다보게 된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아주 가깝고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풍경이다. 여름이 좀 더 깊어지면 계곡의 그늘에 앉아 가방에 넣어 온 책 한 권을 꺼낸다. 산중 독서의 절묘함이 산도 살찌우고 내 마음도 살찌운다.
내가 산에서 가장 많은 위로를 받을 때는 오늘처럼 찬 바람 부는 겨울이다. 예전엔 봄이 참 좋았다. 아마 서른을 폭풍처럼 보내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봄은, 힘든 시간을 견뎌낼 희망이 되어 나를 위로했다. 나의 삶에도 봄처럼 좋은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기대하며 살게 했다. 마흔을 넘기면 모든 것이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한고비 넘으면 또 한고비”라고 하던 친정 엄마의 말이 마흔 고개의 중년에서 자꾸만 생각났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의 중년은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 그때가 되면 굉장한 무언가를 이루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도 이제 슬슬 빛을 잃어간다. 이제는 무언가를 희망하기보다 절망이 더 가까워 자주 분노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오히려 힘들고 버겁다. 그래서인가. 겨울 산은 내가 살아가는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능선의 굽이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때로는 거친 바위들이 끝없이 촘촘하여 나를 지치게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오르다 잎들을 떨어뜨리고 나목인 채로 계절을 나는 겨울 산을 바라보면 속살을 여지없이 드러내어 휑한 산의 민낯을 보게 된다. 모든 것을 좋은 시절에 내어 주고 오로지 몸만 남은 산과 나무처럼 나의 삶이 그런 것만 같다.
그러나, 산은, 나무는 침묵한다. 이러저러한 투정도, 미움도, 핑계도, 탄식도 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에 마음을 쏟다가 멈추는 브레이크마다 한숨이 실리는 나와 다르다. 지금 가진 것이 없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본연의 속성을 잃지 않는 큰 것들이다. 나목이 그득한 능선재에서 겨울 지나면 돋아날 잎과 꽃과 열매를 애써 상상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무수한 나목이 내게 말하기를 기대한다.
저릿저릿한 통증이 요즘 잦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자꾸만 생긴다. 마음을 졸이며 밤잠을 설치다가 주말이 되면 나는 산을 찾는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너 시간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한 달에 두 번 산행은 살면서 나를 옥죄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몸에 담아 두지 말자는 작은 실천 중 하나이다. 나의 남은 날들을 소중히 살아가고 싶은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빨래를 푹푹 삶아 찌든 때를 씻고 햇살에 말리는 것처럼, 나의 거친 생각과 지친 몸을 자연에 풀어 놓는다. 전신이 땀에 젖고 험한 바위산에 무릎이 접혀도, 오르다 보면 산은 내게 새로운 안식의 길을 반드시 선물한다. 그러고 보니 ‘산’과 ‘삶’은 글자꼴마저 닮았다. 한 달에 두어 번, 내 삶을 산에 풀어 씻고 다듬고 널어 바람에 말리다 보면 산을 닮아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