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새

by 글똥

몇 달을 건너뛰고 모처럼 그녀와 조우했다. 유래 없이 추웠던 12월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찾아간 숲은 여전히 포근하고 따스했다. 세상의 거친 바람과 차가운 공기를 다독이는 숲, 우리는 설렁설렁 그 사이를 누빈다. 아직도 형태를 보존하고 바스락거리는 갈잎 소리에 꽁꽁 얼어버린 작은 물구덩이 앞에서 놀라 달아나는 고라니 식구들. 삭정이 위에서 깡충거리다 포르르 날아가는 오목눈이. 숲에서의 겨울은 온통 정겨움이다.


꽁꽁 언 숨은지에 온갖 무게를 가진 물건들을 던진다. 강풍과 혹한에 부러진 나뭇가지, 얼어버린 흙덩이가 얼음 위에서 미끄러진다. 그것들의 가벼움과 얼음이 만나는 지점에 언제나 탄생하는 겨울새들의 소리, 핏핏핏핏 피이이이이. 청아한 소리는 언제나 내 마음의 길을 정확하게 열고 들어와 필요한 자리에 매김 한다. 녹이고, 씻기고, 버리고, 채운다. 게다가 몇 달 만에 찾은 오늘, 숲 속의 새는 오래 내 마음에서 울어야 했다.


오십이 넘어 누군가와 함께 겨울새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유사한 감성의 골과 언어의 결을 가지고 중년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가 먼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나는 숲을 찾는 일이 뜸해졌다. 홀로 몇 번을 찾다가 이내 횟수가 줄어들고 기어이 몇 달을 잊고 살았다. 친구와 만나자마자 나는 그녀에게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시라는 것'등을 발음해 달라 부탁하였다. 그녀의 입을 통해 내 귀에 도달하는 소리가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 허기진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동안 나눌 수 없었던 언어들을 숲을 누비며 흘리는 동안 나는 자연인에 점점 가까워지는 듯하여 마음이 즐거웠다. 바빴던 몸과 마음의 템포들이 늘어난 카세프 테이프처럼 자꾸 느려지는 게 행복했다.


그 자리에 '뻥'하고 숨구멍이 하나 열리고, 포도지와 쌍봉지, 부들지와 돌 차며 걷는 길을 지날 때마다 깊은 호흡이 들락거려도 좋을 숨구멍이 열렸다. 그때마다 겨울새들이 산울림처럼 머릿속에서 '핏핏핏'거리며 노래했다. 태어난 시절이 다른 얼음은 고운 무늬를 바닥에 남기고, 탱탱하게 얼은 얼음은 햇살의 장난에 별모양으로 금을 만들었다. <빨간 머리 앤>의 겨울숲의 시간이 여기보다 더 좋았을까? 나의 사랑하는 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은 이 겨울의 풍경을 다음 주에 다시 오마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 겨울새 한 마리, 내 머리 위에 앉아, 노래한다. 핏핏핏핏 피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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