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겨울이 오래 머무는 동네가 있다. 잭 런던의 소설 <야성의 부름>에 나오는 알래스카다. 눈과 얼음이 공존하는 세상, 광활한 눈밭을 뛰어다니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한 마리 개의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가, 멋진 풍경과 함께 펼쳐진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판사의 애완견인 벅은 천방지축 사고뭉치다. 앙심을 품은 하인으로 인해 헐값에 팔려 간 벅은 시도 때도 없는 몽둥이 매질로 험한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알래스카 유콘강의 우편배달 썰매견이 되어 생애 처음으로 차가운 눈을 접한다. 눈길에서의 미숙한 걸음과 자꾸만 미끄러지는 빙판길의 알래스카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처음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일까. 함께 하는 썰매견들의 약육강식을 지켜보며 벅은 먹을 것을 약자에게 양보하고, 위험에 처한 동료를 위해 희생을 마다치 않는다. 그러한 벅의 모습은, 이 시대의 우리 삶과 리더의 자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작년 5월, 코로나 19의 위협 때문인지 이 영화는 3일 반짝 상영되었다. 예고편을 보면, 알래스카의 광활한 눈밭을 헤치며 동료들과 썰매를 모는 벅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그뿐인가. 집배원이었던 프랑수아가 얼음이 녹아 유콘강에 빠졌을 때 망설임 없이 뛰어 들어가 구해내는 장면은 조마조마하면서도 감동의 도가니로 우리를 몰고 간다.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벅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은 벅과 우정을 나누는 손턴과의 오두막 생활이다. 해리슨 포드의 농익은 연기와 벅의 우정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열병으로 어린 아들을 잃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손턴이 벅과의 여행을 통해 진정한 친구가 되어 함께 머물렀던, 그 오두막을 찾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전반에는 화가 밥 로스의 그림에서 자주 보았던 풍경이 시간과 계절을 넘나들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친 강의 상류를 따라 리프팅을 즐기고 섬진강의 하류쯤으로 생각하면 좋을 잔잔한 강에서 함께 헤엄치며 놀다가 강바닥의 금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모습, 윤슬을 바라보다 낮잠을 즐기는 한 때, 그리고 달빛의 그림자에 둘이 서로 기대어 잠든 모습은 각박하고 답답한 도시 생활에 지친 우리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과 무언의 진정성을 선물한다.
애완견에서 성견이 되는 동안, 동물로써 본연의 모습을 찾은 벅은 숲으로 돌아가고,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던 손턴은 결국 욕망에 불타는 한 인간의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손턴과 벅을 통해 작가인 잭 런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진심으로 사랑과 마음을 주었던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귀띔이라도 해 주고 싶었던 걸까. 벅 같은 친구, 벅 같은 인연이 내게도 함께 하기를 바라던 마음이 망망대해를 지나 여기까지 닿은 겨울을 마주한 지금.
경산을 가로지르는 남천이 전에 없이 꽁꽁 얼었다. 칼바람을 가르며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이 허공에 낭자하다. 바람 따라 흩어지는 햇살의 끝엔 겨울이 둥지를 튼 지 오래, 결빙의 시간에 이어 곧 폭설이 올 거라는 예보가 남부지방의 어린이를 또 설레게 한다.
오랜만에 구경하는 얼음 탓인지, 한참을 놀고도 집으로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설득 중인 아버지의 어깨에 노을이 내려앉는다. 어둑해져 오는 어느 날의 저녁, 나는 남천의 얼음판에서 알래스카의 눈발을 헤치고 달려오는 벅의 꼬리를 설핏 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