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분다. 청명한 날이 좋아 중산지 산책을 나섰다. 공원의 광장에서 가족과 함께 나온 꼬마들이 얼레를 들고 연을 날리고 있다. 아빠들은 연을 붙들고 앞서 달려가는 아이의 뒤를 쫓아 높이 날아오르도록 팔을 치켜들고 달린다. 허공을 비틀거리던 연이 바람 앞에 중심을 잡고 이내 하늘 풍경을 수놓는다.
아프가니스탄의 하늘 아래에도 연을 쫓던 아이가 있었다. 오래된 전통인 연싸움대회에서 승리한 주인집 도련님의 연을 줍기 위해 천 번이라도 달려가던 하산. 그는 언청이에 못생긴 아이였지만, 실은 주인집 바바의 혼외자식이었다. 부족한 것 없이 주인집 아들로 귀하게 자란 아미르는 아버지가 보잘 것 없는 하산을 칭찬하자, 질투와 열등감으로 하산을 모함에 빠트려 쫓겨나게 만든다.
1979년,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에 진군해 유혈극이 시작되자,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미국에서의 빈민 생활을 시작한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정착한 그곳에서 성장한 아미르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어릴 적 하산을 질투하여 그를 힘들게 했던 죄책감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처럼 가깝고도 멀어서 가장 그리운 이가 가장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가정을 이룬 후 아미르는 기억의 저편에 밀쳐 두었던 하산의 추억을 한 통의 편지로 인해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는 회피하고 있던 고통의 현장, 카불로 떠날 채비를 한다.
진정한 용기는 죄의식을 느낄 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이슬람교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 쿠데타로 인한 왕정의 붕괴, 폭정에 모든 재산을 잃고 살길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던 아미르에게 이미 조국은 생명을 보장받기 힘든 전쟁터였다. 그러므로, 폐허가 된 현장을 누비며 하산의 아들, 소랍을 구해 내려는 아미르의 용기는 우리가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지점에 있다. 아미르는 그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하산의 아들 소랍을 만나 미국으로 왔으나 안타깝게도 소랍은 실어증에 걸리고 만다.
아미르는 이미 세상을 떠난 하산의 아들 소랍을 최선을 다해 보살핀다. 어린 시절,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였던 하산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의 죄책감이라고 하기에 그들의 관계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실리를 따지는 사회생활과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구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씁쓸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인 알레드 호세이니는 아미르라는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사람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비겁하고 졸렬한 미생의 삶을 살다가도 문득 우리는 용감한 아버지가, 정직한 어머니가, 착한 딸과 아들이, 친구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멋진 내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잃어버린 용기를 소환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되어 아미르라는 인간을 카타르시스의 절정에 올려놓는다. 바람 부는 어느 날, 소랍이 연을 날리는 풍경 속에서 아미르는 자신을 위해 연을 쫓던 하산을 기억한다.
-저 연을 잡아다 줄까
소랍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아미르를 위해 천 번이라도 연을 쫓던 아이 하산, 소랍을 위해 천 번이라도 연을 쫓는 아미르. 이 책과 영화는 우리에게 ‘젠다기 미그자라’는 문구를 남기고 막을 내린다. ‘삶은 계속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쫓는 연은 무엇인가.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우리의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하늘을 나는 중산지의 연과 아이의 웃음과 아버지의 미소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돋을새김 중인지, 지나온 걸음을 자분자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