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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Dec 27. 2021

다시, 바느질

여름, 찬란한 시간을 걸었다.


자욱함을 뚫고 햇살이 내리거나 땅 위 낙엽들의 일부가 반짝이거나 나비처럼 펄럭이며 막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햇살 한 줌 보태는 포근함이거나.


그 시간들 있었기에 다시, 삐뚤빼뚤하지만 오직 나만의 시침질로 시작하는 새날. 


지금까지 내 생의 바느질은 대체로 급하고 소란스러운 재봉틀 같았다고 할까. 숨 쉴틈도 없이 다다다다 온박음질로 빼곡한, 여기저기 왔다 갔다 들쭉날쭉 정신없이 섞여 있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세계였다 하면 될까.


찢어진 걸음, 구멍 난 걸음 투성이로 오십이 될 때까지 목적 없이 걸어온 내 생의 바느질. 덜컥 탈이 난 몸이 되어 돌아보니 그 모양새가 가관이다.


지금부터라도 지난 걸음 유심히 살펴 뜯어진 자리, 붕 건너뛴 자리, 엉켜버린 자리를 보듬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보.


숲을 선택한 건 행운이다. 도시를 벗어나 오롯이 숲의 탯줄을 붙들면 나는 엄마 뱃속의 아기처럼 편안하다. 태의 공기 속을 유영하며 조금씩 자란다.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맑아진다. 발 끝에 모아지는 힘은 내일을 견딜 양분이 된다. 자연이 만든 또 다른 나는 그렇게 세상으로 나온다.


이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제대로 된 걸음 하나 남겨야지. 나를 엮은 생의 실타래를 햇살에 눕혀 곧게 펴야지. 흠 많고 탈도 많은 부끄러운 내 과거지만 괜찮다고,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다고,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지금부터라도 바르게 수놓는 바늘이 되자고. 좋은 사람, 좋은 말, 좋은 음악, 좋은 생각, 좋은 마음으로 그간의 노독을 씻고 녹을 닦아내자고. 그리하여 나를 훑고 지나간 숲의 모든 것이 내 생의 바늘이 되어  ,  놓은 수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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